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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작은 생채기도 확대해석하고 남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쉽게 비난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링컨은 켄터키 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촌사람’입니다. 부모는 침례교 한 종파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교회에선 금욕주의를 신봉해서 술은 물론 춤도 배척했으며 노예제 역시 반대했다고 합니다.
    
링컨은 아버지의 농사를 돕다가 22세에 독립해서 뱃사공, 가게점원, 토지측량사, 우체국장, 레슬링선수, 변호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링컨은 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이를 명문화한 미국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켰습니다. 링컨이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중용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재선에까지 성공했지만 늘 박수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링컨은 현실적, 점진적인 노예해방을 주장한 공화당 중도파여서 공화당 급진파로부터 “노예해방에 소극적”이라고, 민주당으로부터 “평화와 협상에 소극적”이라고 비난받았습니다. 남부 분리 독립주의자들에겐 당연히 ‘원수’였습니다.
    
링컨은 분리 독립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은 재판 없이 구속할 수 있게 했고, 언론집회의 자유도 제한해서, 지금도 이를 비난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일정액을 내면 징집을 면제해줬다가 폭동을 불렀습니다. 아일랜드계를 중심으로 백인 빈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지요. 뉴욕 경찰이 진압에 실패하자 군대가 투입돼 무력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120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가 2000명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도 링컨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받습니다. 허물보다 이룬 것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링컨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의 보편 가치를 구현했습니다.
    
링컨은 지독한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어머니와 누나, 첫 연인을 허무하게 잃고 마뜩치 않은 여자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는데 그녀의 집안은 노예를 소유한 지주였습니다. 네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세 명을 일찍 여의었습니다. 링컨은 늘 웃으면서 유머를 구사했지만, 속으로는 악전고투의 삶이었습니다. 링컨은 “내가 만약 웃지 않았다면 나는 밤낮 나를 누르는 무서운 긴장 때문에 죽어버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살충동에 무릎 꿇지 않으려고 호주머니에 칼이나 총을 넣고 다니지 않았고, 나무에 목매달아 죽고 싶은 충동을 피하려고 혼자 숲속을 산책하는 것을 삼갔습니다.
    
링컨은 매일 저녁 유머 책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부 측근이 링컨의 ‘썰렁한 유머’가 고통스러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즐거워야 유머를 할 수 있다고 믿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머는 우울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오늘 누군가가 들려주는 유머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작은 생채기도 확대해석하고 남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쉽게 비난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때 자신과 다른 사람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미소와 유머 아닐까요? 오늘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왜 누군가를 기쁘게 하면 스스로의 고통이 가벼워지고,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생기는지 느껴보시는 것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YS가

후농 김상현 의원을 추억하며

SNS가 의외로 조용하다. 6선 의원이었던 후농 김상현 의원이 별세했는데 애도나 감회를 표하는 포스팅이 적다. 개인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그만한 생명력을 지닌 정치인도 흔치 않았다고 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읊으며 유연한(?) 정치 이력을 통해 선수(選數) 쌓은 정치인은 많지만 김상현은 그런 이들과는 좀 종류가 다른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은 비포장에 돌밭길로 점철돼 있고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 한다.
그의 호 ‘후농’(後農)을 지어 준 사람은 요즘 생애 최대의 위기에 처한 고은이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감방 동기가 됐던 고은이 그에게 호를 지어 주겠다 해서 건넨 호다. 무슨 뜻인고 하니 인생 내내 고생만 하고 희생타만 쳤으니 인생 후반엔 농사 잘 지어서 좀 많이 거두고 살아라는 뜻이었단다. 그런즉 그때까지 그의 삶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만하다.
전쟁통에 어머니 잃고 아버지도 나이 열 넷에 돌아가셨으니 일찌감치 하늘이 무너진 셈이고 두 손 부르쥐어 봐야 땀밖에는 쥘 것이 없던 팍팍한 인생이었다. 구두닦이부터 허드렛일까지 하며 발버둥쳤지만 야간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웅변학원도 등록했는데 그 학원 부원장님의 함자가 김대중이었다.
부원장님이 강원도 인제 보궐선서에 출마하자 웅변학원생 김상현도 강원도 인제로 출동하여 열렬히 선거운동을 한다. 김대중 후보는 당선됐지만 5.16 쿠데타로 초단기 국회의원으로 첫 의원직을 마감한다. 김상현도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이후 김상현 역시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첫 금배지를 단다. 나이 스물 아홉 때 일이었으니까 역대 최연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26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지간히 젊은 나이에 금배지를 단 셈이다. 그 후 계속 국회에 등원했으면 아마 김영삼 대통령의 9선이나 서청원, 이만섭 의원의 8선 정도는 거뜬히 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의 등원 기록을 보면 6,7,8 3선을 한 뒤 바로 14대로 건너 뛴다. 8대 총선은 유신 직전인 1971년에 치러졌고 14대 총선은 1992년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업자’로 지낸 셈이다. 그 사이 5년은 감옥살이를 했고 집안에 갇힌 건, 즉 가택연금을 당한 건 73차례였다.
우리 역사에 ‘투사’는 적지 않다. 그러나 견결함과 유연함을 함께 갖춘 정치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20년간 치열하게 싸우고 웬수같이 대들면서도 적장(敵將)과 스스럼없이 만나 담판을 벌이고 인간적인 관계까지 맺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었다.
정치가 무엇이냐를 논할 깜냥은 전혀 못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말한다면 적과 친구가 수시로 바뀌는 세상사 속에서 그 사이를 조율하고 배려하고 그 사이에서 길을 내는 일이다. 김상현은 그 일을 했던 정치인이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인숙 여인 사건 당시 국회에서 “정 여인에 관계된 사람이 26명이나 된다고 하고 총리가 관계되었다, 대통령이 관계되었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돌아다닙니다.”라고 폭탄 선언을 해 버려 국회를 뒤집어 놓았던 것이 그였다. 그때 국회에서 공화당의 돌격대장이 바로 10.26 당시의 경호실장 차지철이었다. 차지철은 “사과시켜!” 때려죽일 듯이 악을 썼지만 그런 정치적 차이를 넘어 김상현은 국회의원 동기 차지철과 돈독한 친구 사이였다. 김상현의 친화력은 대단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서방파 두목 김태촌은 고향 친구로서 “친화력과 추진력이 있었던” 김상현을 깍듯이 모셨다고 하며 김상현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줬다가 남영동 고문 분실 신세를 진 적이 있다고 죽기 전 회고에서 밝힌 바 있다. 어디 깡패 뿐이랴. 김상현은 1979년 11월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보안사 서빙고실에 끌려가설랑 허벌나게 두들겨 맞다가 전두환한테 끌려가서도 권커니잣커니 술을 먹기도 했다. 그때 전두환이 갑자기 권총을 빼서 자기 심장을 겨눴다고 한다. “나는 보안사령관만 해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이오. 나는 야심 같은 거 없습니다” 그때 김상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새끼 욕심 많은 새끼구만.”
일생 동안 가장 가까이 지냈으되 결정적인 순간 그와는 살풋 어긋났던 이가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상현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되어 가는 과정의 이정표 노릇을 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YS가 늙수그레한 야당 리더들을 치고 나왔을 때 이를 무모하다고 고개를 젓던 김대중의 등을 떠민 사람이 바로 김상현이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안 끼면 앞으로 판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말이 있다고 표현한 것은 김상현 본인의 말이기 때문,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회고하며 김상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의 몰락의 유의미한 시작이었다 할 1985년 2.12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 창당의 주역도 그였다. 김대중은 신당 창당에 반대했지만 김상현은 김영삼계와 연합한 민추협을 주도하며 신당 창당을 밀어부쳤고 그 성과는 김대중의 금의환향의 레드 카펫이 됐다.
김상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드높은 봉우리 같은 정치인은 못되었으되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고갯길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 큰 산들의 양지바른 자리에 뿌리내려 몸을 불리는 거목이 애초 될 수 없었다. 그래서 6선 의원에 그 드넓은 마당발과 정치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야당 대표는 고사하고 사무총장, 그 흔한 원내 총무도 못해보고 정계를 마감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 태산들로부터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상현은 4자 필승론을 주창하며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김대중을 따라가지 않는다. 김대중 자신 이때의 선택을 뼈아프게 후회한다고 얘기하기도 했거니와 개인적으로는 김상현의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데, 아무튼 김상현은 통일민주당에 남아 김영삼을 돕는다.
그러나 1990년 3당합당이 별안간 선포되면서 그는 격렬히 분노한다. 역사에 남을 사진이 된 노무현의 “이의 있습니다.” 사진 옆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이가 바로 김상현이었다. 그리고 다시 김대중과 함께 하지만 그리 빛을 보지 못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짜디짠 미역국을 먹은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이 영국으로 가면서 민주당을 맡긴 건 김상현이 아니라 이기택이었다.
하지만 김상현은 이런 류의 서운함을 분노로 표출하거나 “그 사람 앞으로 안봐” 버린 적이 없다. 고빗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에게 아픈 소리를 하거나 대놓고 길을 막았던 DJ 가신 그룹의 좌장 권노갑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김상현은 지금껏 한번도 나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리고 깍듯하게 나를 ‘형님’으로 대하며 어떤 자리에서도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정치인 가운데 가장 통이 크고 포용력이 큰 사람이다.” (동아일보 2014년 6월 14일자)
조금 틈이 벌어지거나 의견이 갈라지면 벌떼 같은 양념들이 드럼으로 퍼부어지고 사생결단 건곤일척의 드잡이질이 난무하며 상대방을 인간 이하로 깔아뭉개기 일쑤인 세상이어서 그럴까, 김상현같은 정치인이 많이 아쉽다.
또 비록 태산은 못되었으나 태산 같은 정치인 앞에서 아닌 건 아닙니다 할 수 있었고 태산의 존재를 일깨우며 당신은 이리해야 합니다 바른말 할 줄 알았던 고인을 떠올리면 “아무개의 복심”이니 뭐니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숫제 대통령과 악수하는 자신의 등짝을 포스터로 쓰는 전직 전대협 의장님 출신의 후보들 앞에서 앞서의 아쉬움이 배가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ㅡ From 후배 김형민PD

‘질량보존의 법칙’을 비롯하여 화학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러 법칙들을 발견

< 천재 라브와지에와 그 아내 >
 피를 보지 않는 혁명이란 거의 없을 거야. 혁명이란 자체가 누르고 밟고 덮고를 무시로 또 무한 반복한 뒤에 터져나오는 끓는 물줄기 같은 거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다칠 수 밖에 없지. 혁명이 성공하여 그 희생들이 역사적 밑거름이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불의 격랑에 휘말려 허무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면면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치부하고 원래 혁명이 그런 거야 하고 잘난체하는 것 또한 좋은 자세는 아닐 거다. 내가 그만큼 당해 보지 않았고, 저 ‘간악한’ 적들의 폭력을 받아보지 않아 그런진 모르겠으나 “먼훗날 해방의 그날에 반동의 피로 붉게 도색하리라.” 같은 노래 가사는 도저히 수용이 불가했으니까.
그렇게 많은 유혈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다. 프랑스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죽어간 한 천재 화학자도 그렇지. 이름은 라브와지에. 기억력 하나는 나보다 나은 너희니까 아마 쉽사리 화학시간에 배운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거다. 화학을 미와 양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나로서는 그닥 달갑지 않은 이름이다만. ‘질량보존의 법칙’을 비롯하여 화학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러 법칙들을 발견하고 그를 입증한 천재 화학자였지.
잠깐 서력 기원 시대로 올라가 보자. 예수의 제자로 마태복음의 주인공 마태의 직업이 뭐였는지 아니? 그는 세리였어. 즉 세금 걷는 관리였지. 예수는 이 땅에서 죄인들인 세리와 창녀의 친구임을 자처했지. “분명히 말하지만 세리와 창녀가 먼저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거야.”라고 바리새인들에게 얘기해서 거품을 물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창녀는 그렇다고 치고 세리가 왜 문제가 될까? 당시나 프랑스 혁명 때에나 국세청 같은 관청이 없었다고 해. 그러니까 민간인들에게 그 임무를 민영화(?)했고 그들은 완장을 차고 비슷한 사람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업을 삼았으니 그 원성이 자자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니. 라브와지에가 바로 이 세금징수인조합의 조합원이었어.
그는 원래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관심은 법전보다는 실험실의 비이커에 있었어. 화학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던 그가 세금징수인이 된 건 누구의 지원도 없이 혼자 모든 실험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상황과도 연관이 있어. 예술가들은 귀족의 후원이라도 받았지만 어느 귀족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화학 실험에 돈을 바를 수 있었겠어. 결국 라브와지에는 자력갱생을 해야 했고 그 수단으로 동원한 게 세금징수인이었지.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낮에는 세금을 거두러 다녔고 거기서 생긴 돈으로 실험 자재롸 재료를 샀고 밤에는 연구에 몰두한다. 주세야독?
세금징수인조합은 그에게 돈만 준게 아니라 평생의 은인이자 사랑도 줬어. 바로 직장 선배의 딸이자 열 세 살이자 연하이자 당시 나이 열 네 살의 (이런!!!!)마리와 결혼한 거지. 뭐 춘향이가 몽룡이를 만난 게 열 여섯이니 마냥 애라고 말하긴 어렵겠다만. 그런데 이 여자는 라브와지를 평생 사랑했을 뿐 아니라 유능한 조력자이기도 했어. 아 그녀가 퀴리 부인같은 라브와지에 부인이었던 건 아냐. 그녀는 과학에 그렇게 큰 이해는 없었어. 하지만 라브와지에가 실험실에 틀어박힐 수 있었던 일요일, 남편 옆에 붙어서 화학 실험을 도왔고 노트에 결과를 일일이 적고, 실험 기자재를 정리하는 등 뒷수발을 다 들었지. 거기다 그녀는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는데 라브와지에의 역사적인 저서 <화학의 기초>에 실린 삽화들은 몽땅 그녀의 솜씨라고 하네. 거기다가 외국어도 능통해서 외국의 학설들을 번역하고 남편의 주장을 외국어로 옮기는 구실도 했다고 해. 이런 유능한 조교가 어디 있었겠어.
그렇게 알콩달콩 또 열심지성으로 세금징수원과 화학자로, 그리고 사랑스런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던 그들 부부에게 프랑스 혁명이 닥쳐 온다. 부르봉 왕조를 위해 일한 세금징수원에게는 자기 코로 자신의 피비린내를 맡을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지. 특히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시작되면서 라브와지에의 목숨은 경각에 달한다. 라브와지에는 법학을 전공한 처지로 열변을 토하며 자기 변호를 하지만 공포 정치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살려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있으니 나를 조금만 더 살려서 그를 완성하고 죽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재판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공화국에는 과학자가 필요없다.”
프랑스 혁명 당시 목이 잘린 롤랑 부인은 “자유!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행해졌던가!”라고 절규했다고 하는데 “공화국”이라는 이름도 참 여러 사람을 집어삼킨 괴물의 별명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남편 (이 둘은 같은 날 목이 떨어진다)의 풍전등화같은 목숨 앞에서 필사적이 된건 마리 라브와지에. 그녀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주했어. 하지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혁명의 적으로 몰리면 자기 위에 기요틴이 키스할지 모르는 마당에 세금징수원 라브와지에를 위해 나설 사람은 드물었어, 심지어 “저 머리를 치는 건 한순간이지만 저 머리를 만드는데에는 100년이 걸린다.”고 한 수학자 라그랑쥬도 라브와지에 부인의 호소에 모르쇠한다. 아내는 자신의 호소를 거절하는 이들의 명단을 마음 속에 돋는 칼로 새겨 둔다.
라브와지에는 처형 당시 이런 유언을 남긴다고 해. “나는 충분히 길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더 이상 무엇을 원하겠는가? 내게 내려진 이 상황은 나에게 아마 늙은이로서의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나는 늙은이로 죽지 않을 것이고 이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달관한 한 천재의 푸념이자 자신의 열정과 두뇌, 그리고 사랑스런 조력자와 함께 인류 과학사에 잊지 못할 공헌을 한 과학자의 쿨한 귀거래사.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과학자였어.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단두대에 오른다.
“내가 목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계속 눈을 깜박일 테니까. 얼마나 깜박이는지 시간을 재 보게” 사람이 목이 잘려나간 후 얼마나 생존하는가, 의식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길은 아마도 이 방법 밖에는 없겠지. 라브와지에의 머리는 15초동안 눈을 깜박였다고 전해. 라브와지에 사후 라브와지에 부인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돼. 그녀 역시 기요틴의 칼날 아래 엎드리기 직전, 공포정치가 끝난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됐고 그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나간 거지. “공화국에는 과학자가 필요없다.”고 한 재판장도 그 떨어져 나간 머리가 자신의 몸뚱이를 보는 꼴이 되고 말아.
풀려난 아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라브와지에의 연구 기록을 돌려 받는 일이었어. 혁명 정부는 라브와지에의 목을 친 후 그 모든 자료와 기록을 없애버리려고 압수했거든. 그런데 인류에게 고마운 일은 로베스피에르가 먼저 죽었다는 것. “남편의 실험 자료를 돌려 주세요.” 애타게 부르짖은 마리 라브와지에에게 그 기록은 단순한 과학 노트가 아니었을 거야. 그 후 재혼하기도 하지만 끝내 라브와지에를 잊지 못했고 다시 이혼해 평생 혼자 살았던 마리에게 그 기록이란 행복한 결혼 생활의 증좌이자 자신의 재능도 함께 발휘됐던 소중한 보물이었겠지. 그리고 라브와지에의 시신을 수습하여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이때 말로는 라브와지에를 아까워하면서 아내의 구명 호소에는 입을 씻었던 라그랑쥬도 참석했다고 해. 또 다른 화학자 동료들도. 마리는 그들에게 시선도 두지 않았다고 하네. “남편의 연구에 숟가락 하나 얹을 생각하지 마세요.” 하는 가시 돋힌 말과 함께.
마리 라브와지에는 화학자는 아니었지만 (남편에게서 교육을 받긴 했겠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과 사랑은 라브와지에의 연구를 정리하고 꽃피우고 결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녀를 화학의 아버지 라브와지에에 빗대 ‘화학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해.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인류 과학사의 큰 보물을 분실했을지도 모르지. 혁명은 짧고 사랑은 길다.
1783년 6월 24일은 그가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한 날.
ㅡ From 후배 김형민PD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권위나 전통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의자하면서 생기는 우상.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해당한다.

철학(哲學). 한자 뜻대로라면 ‘밝은 학문.’ 영어는 ‘Philosophy.’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되죠? 1561년 오늘 영국에서 태어난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혜를 뜨겁게, 뜨겁게 사랑한 철학자였습니다.
    
베이컨은 아마 세상의 잣대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서양철학자일 겁니다.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도장을 관리하면서 법무장관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랐고 남작, 자작의 작위를 받았지요. 그러나 왕권과 의회 권력이 대립했던 당시 의회에 의해 뇌물을 받은 ‘적폐세력’으로 몰려 기소됩니다. 베이컨이 낭비벽이 심해 빚을 갚기 위해서 뇌물을 받았다고도 하고, 그때에는 법관이 금전을 받는 것이 관례여서 정치적 희생양이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베이컨은 “나는 지난 50년 동안 가장 공정한 재판관이었지만, (나를 기소한) 이 판결은 최근 200년 동안 의회가 내린 가장 공정한 판결”이라며 처벌을 달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런던탑에 갇혔다가 곧 풀려납니다.
    
역사에서는 베이컨을 정치인보다는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합니다. 당시 학자들은 스토아 철학이나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논리학을 통해 ‘진리’를 이끌어냈는데, 베이컨은 명저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이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당시 학자들은 논리학의 최대무기였던 ‘삼단논법’으로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A는 사람이다 △따라서 A는 이성적 동물이다! 식으로 진리를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베이컨은 A가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이 이성적 동물인지 아닌지 관찰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진리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관찰이나 실험을 거치지 않은 맹목적 인식을 ‘우상’(idola)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지요? 
    
베이컨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진리를 찾는 ‘귀납법’의 체계를 세웠는데, 이는 근대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하지만, 베이컨도 후대 철학자에 의해 부정됩니다. 귀납법으로 확정했다고 믿은 ‘진실’도 ‘진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9999만 마리 까마귀가 검은색이어서 “까마귀는 검다”는 명제는 ‘참’이라고 했는데, 어느 날 흰색 까마귀가 발견되면 이 명제는 ‘거짓’이 되니까요.
    
근대와 현대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를 찾고 있지만, 어떤 것이 진리인지조차 정답은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곧 진리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기 끼리의 생각이 옳다는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적 사유가 빈약해서 똥고집이 센 사람을 ‘자기 철학이 있다’고 박수칩니다.

자신이나 우리가 틀릴 수도, 다른 사람이나 저 편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철학적 사유일 겁니다. 자신이 뭐하는지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남을 비난하는 것도 '철학의 빈곤'에서 오는 현상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 철학, 지혜에 대한 사랑이 번져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에서 자유로운지?

베이컨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을 네 가지 우상으로 요약했습니다. 저도 뜨끔합니다. 사람이기에 은연중에 이들 우상에 사로잡히기 쉽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인류라는 종(種)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사고가 잦은 것은 잘못된 정치에 대한 징벌” 따위의 생각.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 특정 직업군 사람 몇 사람을 접하고 “그 직업군 사람은 다 그래” 식으로 단정하는 것.
○시장의 우상(idola fori)=사람들과의 교류와 만남에서 생기는 우상. 지역감정, 패거리 악플, 주식시장의 루머나 음모론 등이 대표적 산물.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권위나 전통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의자하면서 생기는 우상. 우리나라에서 황우석 사태는 대표적인 예.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해당한다. 18세기에는 없었던 영화가 ‘극장의 우상화’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가, 사회를, 그리고 세상을 더 밝게 만든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집 교사들의 폭력 행위가 뉴스에 자주 보도되는데,

TV에서는, 영상화 하기 쉬운, 육체적 폭력을 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서적 폭력도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


[릴리는 칭찬이 필요해요]는 아이가 어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으며, 

성장기를 보내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어른으로서, 정말 큰 미안함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어른들 역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완전히는 지워지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서적, 육체적, 언어적 폭력들이, 성인이 된 한 개인의 기억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쑥불쑥 떠올라서, 세대에 세대를 거쳐, 

사회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되갚아져 나가고 있다는 점은, 꽤나 무섭기까지 했다. 


오늘 나에게 비난 받은 저 아이는, 30년 후에, 그리고 60년 후에도, 그 비난을

다음 세대의 어린이에게 되갚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오늘 나에게 칭찬 받은 저 아이는, 30년 후에, 그리고 60년 후에도, 그 칭찬을

다음 세대의 어린이에게 되갚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비난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 위로를 건네야 할 때다.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가, 사회를, 그리고 세상을 더 밝게 만든다.

그 개인의 행복과 성취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자녀를 편애하지 않는다"고 부모들은 착각한다. 자신도 편애 때문에 상처 받으며 자랐기에

동생과 불과 몇 살 차이...  (심지어 연연생인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큰 아이는, "네가 언니니까 참아라! 너는 오빠가 되서 왜 동생하고 싸우냐?

당연히 형이 양보해야지" 등의, 억장이 무너지는 편애에,

'혹시 나의 진짜 부모님은 어딘가 다른 곳에 계신게 아닐까?' 같은 처참한 비애를 느낀다.


큰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기도 전,,, 불과 4~5살 무렵부터 이런 정서적 폭력에 노출된다.

그것도 그 아이를 보호해주어야 할 부모로부터!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내에서 말이다.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편애 해봐라. 보육교사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난리 칠 부모들이, 정작 자신들의 가정 내에서는, 편애하는지 조차 모르는채 편애를 한다.


큰 아이는, 6~7살이 되어서도, 계속 이런 터무니 없는 학대에 상처받는다.

단지 큰 애라는 이유만으로, 

도대체 뭐가 크다는 말인가? 고작 8살짜리를, 

단지 그 보다 더 늦게 태어난 아이와 비교해서 큰 아이라니, 

그래봐야 큰 '아이'도 아이일 뿐이지 않은가?



반면, 작은애는, 10살이 되도, 12살이 되도, 14살이 되도, 여전히 작은 아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서른 넘은 남동생이, 이미 시집을 가서 자신만의 가정을 꾸린 누나에게

사업자금이라며 돈을 뜯어내는데, 그걸 부모라는 자가 조장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 부모에게는, 34살의 백수 아들이 여전히, "작은 애"인 것이다)


큰 애가, 불과 5살 때부터, 큰 애라며, 온갖 정서적 짐을 짊어지고, 구박에 시달려왔는데

작은 애는, 작은 애라고, 또 한편 이렇게 대한다면, 이 사람은 패륜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누나와 매형에게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고, 그 버릇은 부모에게도 곧 발휘될 것이다.


편애는, 모두를 망친다. 큰 애도, 작은 애도, 그리고 편애를 했던 부모들 까지도.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바칼로레아의 나라 프랑스, 국민 모두가 철학을 하는 프랑스에서는,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고. 여기 그 해답으로서 한 권의 우화가 나와있다.

게다가, 아이들도 함께 읽어보게끔, 철학책이 아닌 만화책의 형식으로 발간되어 있다.


물론,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 못지 않게, "나는 결코 편애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 만만하게 착각하고 있는 부모들이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대한민국의 30대 부모들에게 바친다.  아울러, 어린 시절의 편애로 인한 상처가

응어리 져서, 아직도 마음 한켠에 서러움이 남아 있는 모든 '큰 애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도서, 책, 그림, 그림책, Picture book, Drawing, Art, 국내 최고의 만화책 그림책 창작 그룹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아름답고 위대한 영웅들의 모험담을 즐겨보자!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삶을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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