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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에 흐르는 눈물만이 그대를 위로해줄 때 내 두 팔로 그대를 안아주겠소.

네 안에 작은 믿음을 가져라!
(Have a Little Faith in Me/by John Hiatt)

눈앞이 캄캄해지고
한 치 앞이 안 보일 때
내 사랑으로 길을 밝혀주겠소.
그대여 나를 믿어주오.

두 눈에 흐르는 눈물만이
그대를 위로해줄 때
내 두 팔로 그대를 안아주겠소.
그대여 나를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당신의 상처받은 마음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할 때,
그대, 내게로 와요,
그리고 낮은 소리로 속삭여봐요,
그대여 나를 믿어주오.

막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뒤를 돌면 내가 있어요.
내가 잡아줄게요.
그대 떨어지지 않게
그대여 나를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그대여 믿어주오.

- 영화 벤지(Benli) 타이틀곡 -

인류는 아인슈타인을 얻었지만 밀레바 마리치를 잃었지

< 나쁜 남자 아인슈타인 >
 여자에게 참 잘할 것 같은 남자가 정작 자기 여자에겐 심각한 ‘나쁜 남자’일 경우가 있고 딱 현모양처감인데 여러 남자한테 칼자국 팍팍 내고 다니는 여자도 의외로 흔하지. 참 이상한 건 그런 나쁜 남자와 나쁜 여자일수록 의외로 그들에게 목을 매는 여자와 남자가 있더라는 거지. “네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 여자(또는 남자)한테 응?” 이런 훈계 한 번쯤은 다 해 보지 않았냐? 그래도 그 앞에서 흑흑거리거나 술 퍼먹으면서 나는 걔 아니면 안돼 중얼거리는 멍청한(?) 내지 눈에 본드 붙인 가련한 군상도 봤을 게고.
1955년 4월 18일 세상을 떠났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유독 혀가 긴 이 천재 물리학자는 바로 이 ‘나쁜 남자’ 가운데 상석을 양보하지 않을 사람이야.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위인전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위인’이지만 위인전에서는 그의 ‘나쁜 남자’ 기질은 물론 쏙 빠져 있지. 상대성 원리를 세상에 내놓은 걸출한 물리학자이자 핵폭탄 연구를 미국 대통령에게 권유했지만 막상 개발된 핵폭탄이 위력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반핵운동에 뛰어드는 사명감 깊은 과학자로 묘사될 뿐이지. 하지만 이 사람 매우 나빠요 였다, 특히 그의 첫 부인 밀레바에게는.
밀레바는 세르비아 출신이고 아인슈타인은 유태계 독일인이지. 아인슈타인은 장애를 걱정할 정도로 성장이 늦은 아이였지만 커 가면서 명석한 두뇌를 과시하며 스위스 공과대학으로 입학했고 밀레바는 세르비아의 자수성가한 관리의 딸로서 비록 다리를 저는 장애는 있었지만 그 지능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떨어지지 않을 재원으로 그 대학에 입학했지. 그 해로 치면 유일한 여학생이었어. 둘은 캠퍼스에서 만났지.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단 밀레바가 연상.
아인슈타인은 늙어서의 그 원숭이스러운 얼굴과는 달리 젊어서는 꽤 뺀질뺀질한 미남이었다는구나. 거기에 예술적인 재주까지 있어서 바이올린 한 번 켜면 좌중을 홀릴 줄 알았고 연애편지도 기가 막히게 써서 뭇 여인들을 설레게 했다고 해. 기발한 천재와 노력형 천재의 만남.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수학에 좀 문제가 있었다는 아인슈타인은 수학에 발군이던 밀레바의 도움을 받지.
둘은 금새 호감을 갖고 사귀게 되는데 처음으로 보내는 연애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글쎄 네 살씩이나 누나인 밀레바에게 ‘나의 귀여운 병아리’라고 부르는 맹랑함을 과시한다. “나처럼 강인하고 또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또 한 명의 사람과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거요.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 유감스런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소”
그런데 이 나이 든 ‘병아리’도 이 당돌한 남자가 싫지 않았던 게 문제. “당신이 넉 장이나 되는 편지를 써 보내주신 희생에 감사드리고 또한 지난번 함께 등산하며 저를 그렇게도 즐겁게 해 주신데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심정으로 즉시 답장을 띄우고 싶었지만, 당신은 제가 지루해질 때까지는 답장을 하면 안된다고 지시하셨지요. 그리고 저는 매우 순종형이랍니다.” 이러고 자빠졌으니 뭐..... 잉걸불을 보듯 뻔한 거지.
양가 모두 결혼에는 반대였어. 특히 아인슈타인 쪽이 심했지.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결혼이 곧 자식의 불행일 거라며 격렬히 반대했어. 나이도 많지 다리도 절지 그리고 여자가 똑똑해서 뭐에 쓰냐? 책이랑 결혼할래? 그리고 세르비아라니 안돼! 이거였지. 허 참 자기들은 유태계면서. 심술궂은 한국 시어머니 떠오르지 않냐. 쥐뿔같은 가문 내세우면서 상대 집 가문 따지는.
하지만 둘은 결혼도 하기 전에 사고를 치지. 딸을 낳은 거야. 그런데 이 딸이 어떻게 됐는지는 지금도 설이 분분해. 혼전 자식인지라 어디에 입양시켰다는 설, 그리고 병에 걸려 죽었다는 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지만 왕년의 노력형 천재 밀레바의 과학자로서의 인생은 완연히 끝나 버리지. 오로지 아인슈타인의 아내이자 조수 역할만 수행했을 뿐이야. 사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이야. 아까 말했듯 수학은 아인슈타인의 취약지구였는데 이걸 보완해 준 게 밀레바였거든.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걸 구렁이 담 넘지.
상대성원리를 발표하고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물리학자가 되면서 밀레바는 불안해진다. 아인슈타인의 바람기가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았기 때문이지. 한 번 대학 때 사귀던 여자가 연락을 해 오자 “나는 지금도 아무런 욕심이 없어요. 단지 하나 있다면 그대를 보는 것이랄까” 요 따위 편지를 써서 보내 꼬드기다가 밀레바에게 걸려서 된통 당한 건 그 일례일 뿐이었지. 밀레바는 그럴수록 아인슈타인에게 매달렸지만 또 그럴수록 아인슈타인은 그녀로부터 멀어져 갔어. 후일 두 번째 아내가 되는 이종사촌 누나 (이 인간도 참 연상 취향)이자 애인 (이게 무슨 개족보냐고? 유럽에선 개족보 아냐)이 이혼을 종용했을 때 아인슈타인의 말은 매우 걸작이다. “거 와이프라는 거는 해고하기 힘든 직원 같다니까.”
가엾은 밀레바에게 한번 이혼 얘기를 꺼내 봤을 때 까무라치는 걸 본 아인슈타인은 일단 이혼은 접은 대신 희한한 요구 조건을 내밀어. 두고두고 ‘나쁜 남자’의 전범으로 남을 요구사항이지.
“내 옷과 빨랫거리를 잘 관리하고 세끼 식사를 제 시간에 내 방으로 가져올 것. 내 침실과 서재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특히 내 책상은 나 말고는 손 못댄다.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와의 모든 개인적인 관계를 포기할 것 . 구체적인 예를 들어, 집에서 당신과 함께 앉아 있거나 당신과 함께 외출하거나 여행을 하는 일은 꿈도 꾸지 말 것. 나에게서 어떠한 친밀한 관계도 기대하지 말며, 나를 어떤 식으로든 비난하지 마시오. 내가 요구할 경우 즉각 침묵하시오. 내가 요구할 경우 일체의 항의 없이 즉시 내 침실이나 서재에서 나가시오. 우리 자녀들의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마시오.“
뭐 이쯤 되면 존경스러워질라 그래. 나는 저 말을 꺼내다가는 첫 문장이 채 끝나기 전에 맞아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밀레바는 세상에 이 요구 조건을 수락하면서까지 아인슈타인 곁에 머무르기를 원해. 또 한 번 가엾은 밀레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후덕하고 음식 잘하고 남자 잘 모시는 이종사촌 누나한테 흠뻑 빠져 있었고 가차없는 이혼을 요구하지. 위자료로는 “노벨상 받으면 상금 몽땅 줄게!”였고. 이혼한 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두 아들을 거의 돌보지 않아. 둘째가 정신병이 있어서 엄마 목을 조르는 소동을 벌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밀레바가 작심을 하고 도움을 청했을 때에도 아인슈타인은 먼 산만 바라 봤다지.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노력형 천재 밀레바는 과외 선생을 하면서 돈을 벌며 두 아들을 부양하면서, 특히 정신병원의 둘째 아들에게 몸과 마음을 쏟아부으면서 쓸쓸히 살다가 죽었어. 아인슈타인만 아니었으면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부인)을 능가할지도 몰랐을 재원이었는데 말이지. 인류는 아인슈타인을 얻었지만 밀레바 마리치를 잃었지. 그래도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고 하네. 아마도 이런 편지를 쓸 때의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을지도 모르지.
“얼마 전 스위스에 머물 때만 해도 우리 둘은 몇 번 밖에 만나지 못했었거든. 음, 그런데도 난 앨버트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사랑에 미쳐버릴까 두려워. 그도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내 사랑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는 느낌이야. ” 불쌍한 밀레바. 나쁜 넘 아인슈타인.
ㅡ From 후배 김형민PD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YS가

후농 김상현 의원을 추억하며

SNS가 의외로 조용하다. 6선 의원이었던 후농 김상현 의원이 별세했는데 애도나 감회를 표하는 포스팅이 적다. 개인적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그만한 생명력을 지닌 정치인도 흔치 않았다고 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읊으며 유연한(?) 정치 이력을 통해 선수(選數) 쌓은 정치인은 많지만 김상현은 그런 이들과는 좀 종류가 다른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은 비포장에 돌밭길로 점철돼 있고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 한다.
그의 호 ‘후농’(後農)을 지어 준 사람은 요즘 생애 최대의 위기에 처한 고은이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감방 동기가 됐던 고은이 그에게 호를 지어 주겠다 해서 건넨 호다. 무슨 뜻인고 하니 인생 내내 고생만 하고 희생타만 쳤으니 인생 후반엔 농사 잘 지어서 좀 많이 거두고 살아라는 뜻이었단다. 그런즉 그때까지 그의 삶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만하다.
전쟁통에 어머니 잃고 아버지도 나이 열 넷에 돌아가셨으니 일찌감치 하늘이 무너진 셈이고 두 손 부르쥐어 봐야 땀밖에는 쥘 것이 없던 팍팍한 인생이었다. 구두닦이부터 허드렛일까지 하며 발버둥쳤지만 야간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웅변학원도 등록했는데 그 학원 부원장님의 함자가 김대중이었다.
부원장님이 강원도 인제 보궐선서에 출마하자 웅변학원생 김상현도 강원도 인제로 출동하여 열렬히 선거운동을 한다. 김대중 후보는 당선됐지만 5.16 쿠데타로 초단기 국회의원으로 첫 의원직을 마감한다. 김상현도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이후 김상현 역시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첫 금배지를 단다. 나이 스물 아홉 때 일이었으니까 역대 최연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26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지간히 젊은 나이에 금배지를 단 셈이다. 그 후 계속 국회에 등원했으면 아마 김영삼 대통령의 9선이나 서청원, 이만섭 의원의 8선 정도는 거뜬히 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그의 등원 기록을 보면 6,7,8 3선을 한 뒤 바로 14대로 건너 뛴다. 8대 총선은 유신 직전인 1971년에 치러졌고 14대 총선은 1992년이었다. 무려 20년 동안 ‘업자’로 지낸 셈이다. 그 사이 5년은 감옥살이를 했고 집안에 갇힌 건, 즉 가택연금을 당한 건 73차례였다.
우리 역사에 ‘투사’는 적지 않다. 그러나 견결함과 유연함을 함께 갖춘 정치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20년간 치열하게 싸우고 웬수같이 대들면서도 적장(敵將)과 스스럼없이 만나 담판을 벌이고 인간적인 관계까지 맺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었다.
정치가 무엇이냐를 논할 깜냥은 전혀 못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말한다면 적과 친구가 수시로 바뀌는 세상사 속에서 그 사이를 조율하고 배려하고 그 사이에서 길을 내는 일이다. 김상현은 그 일을 했던 정치인이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정인숙 여인 사건 당시 국회에서 “정 여인에 관계된 사람이 26명이나 된다고 하고 총리가 관계되었다, 대통령이 관계되었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돌아다닙니다.”라고 폭탄 선언을 해 버려 국회를 뒤집어 놓았던 것이 그였다. 그때 국회에서 공화당의 돌격대장이 바로 10.26 당시의 경호실장 차지철이었다. 차지철은 “사과시켜!” 때려죽일 듯이 악을 썼지만 그런 정치적 차이를 넘어 김상현은 국회의원 동기 차지철과 돈독한 친구 사이였다. 김상현의 친화력은 대단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서방파 두목 김태촌은 고향 친구로서 “친화력과 추진력이 있었던” 김상현을 깍듯이 모셨다고 하며 김상현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줬다가 남영동 고문 분실 신세를 진 적이 있다고 죽기 전 회고에서 밝힌 바 있다. 어디 깡패 뿐이랴. 김상현은 1979년 11월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보안사 서빙고실에 끌려가설랑 허벌나게 두들겨 맞다가 전두환한테 끌려가서도 권커니잣커니 술을 먹기도 했다. 그때 전두환이 갑자기 권총을 빼서 자기 심장을 겨눴다고 한다. “나는 보안사령관만 해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이오. 나는 야심 같은 거 없습니다” 그때 김상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새끼 욕심 많은 새끼구만.”
일생 동안 가장 가까이 지냈으되 결정적인 순간 그와는 살풋 어긋났던 이가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상현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되어 가는 과정의 이정표 노릇을 했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YS가 늙수그레한 야당 리더들을 치고 나왔을 때 이를 무모하다고 고개를 젓던 김대중의 등을 떠민 사람이 바로 김상현이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안 끼면 앞으로 판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말이 있다고 표현한 것은 김상현 본인의 말이기 때문,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회고하며 김상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의 몰락의 유의미한 시작이었다 할 1985년 2.12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 창당의 주역도 그였다. 김대중은 신당 창당에 반대했지만 김상현은 김영삼계와 연합한 민추협을 주도하며 신당 창당을 밀어부쳤고 그 성과는 김대중의 금의환향의 레드 카펫이 됐다.
김상현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드높은 봉우리 같은 정치인은 못되었으되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고갯길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 큰 산들의 양지바른 자리에 뿌리내려 몸을 불리는 거목이 애초 될 수 없었다. 그래서 6선 의원에 그 드넓은 마당발과 정치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야당 대표는 고사하고 사무총장, 그 흔한 원내 총무도 못해보고 정계를 마감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 태산들로부터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상현은 4자 필승론을 주창하며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김대중을 따라가지 않는다. 김대중 자신 이때의 선택을 뼈아프게 후회한다고 얘기하기도 했거니와 개인적으로는 김상현의 판단이 옳았다고 보는데, 아무튼 김상현은 통일민주당에 남아 김영삼을 돕는다.
그러나 1990년 3당합당이 별안간 선포되면서 그는 격렬히 분노한다. 역사에 남을 사진이 된 노무현의 “이의 있습니다.” 사진 옆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이가 바로 김상현이었다. 그리고 다시 김대중과 함께 하지만 그리 빛을 보지 못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짜디짠 미역국을 먹은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이 영국으로 가면서 민주당을 맡긴 건 김상현이 아니라 이기택이었다.
하지만 김상현은 이런 류의 서운함을 분노로 표출하거나 “그 사람 앞으로 안봐” 버린 적이 없다. 고빗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에게 아픈 소리를 하거나 대놓고 길을 막았던 DJ 가신 그룹의 좌장 권노갑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김상현은 지금껏 한번도 나를 섭섭하게 대한 적이 없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리고 깍듯하게 나를 ‘형님’으로 대하며 어떤 자리에서도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정치인 가운데 가장 통이 크고 포용력이 큰 사람이다.” (동아일보 2014년 6월 14일자)
조금 틈이 벌어지거나 의견이 갈라지면 벌떼 같은 양념들이 드럼으로 퍼부어지고 사생결단 건곤일척의 드잡이질이 난무하며 상대방을 인간 이하로 깔아뭉개기 일쑤인 세상이어서 그럴까, 김상현같은 정치인이 많이 아쉽다.
또 비록 태산은 못되었으나 태산 같은 정치인 앞에서 아닌 건 아닙니다 할 수 있었고 태산의 존재를 일깨우며 당신은 이리해야 합니다 바른말 할 줄 알았던 고인을 떠올리면 “아무개의 복심”이니 뭐니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숫제 대통령과 악수하는 자신의 등짝을 포스터로 쓰는 전직 전대협 의장님 출신의 후보들 앞에서 앞서의 아쉬움이 배가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ㅡ From 후배 김형민PD

법의 형태가 아닌 그 정신이 정의를 살아있게 한다

공정함을 상징하는 눈 가리개


중세 이전,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를
표현한 조각상들을 보면 한 손에는 법의 힘을 상징하는 검을 들고,
한 손에는 법의 엄격함을 상징하는 천칭을 들고 있습니다.
그 상징이 중세 이후에는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법의 공정함을 상징하는 눈가리개입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지방법원의 '제인스 허킨스' 판사는
재판 때마다 눈을 하얀 헝겊으로 가렸습니다.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판결을 내리고 재판이 끝나면 눈을 가린 헝겊을 풀고
멀쩡하게 걸어 법정을 나섰습니다.
그가 재판할 때 눈을 가린 이유는 유스타치아 여신상이
눈가리개를 하는 이유와 똑같았습니다.
'내가 법정에 들어설 때 눈을 가리는 이유는
사람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원고나 피고 혹은 증인 중의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 자신도 모르게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잘 아는 사람의 잘못을 규정대로 처리하면
매정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이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좌우된다면 사회질서의 뿌리가 흔들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나 자신의 눈을 마음으로 가리는 일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 오늘의 명언
법의 형태가 아닌 그 정신이 정의를 살아있게 한다.
- 얼 워렌 -

스페인 국민들은 마침내 결사적인 봉기를 일으킨다

< 못난 왕가와 마드리드 봉기 >
유럽 왕가들의 혼맥을 보다 보면 말이지 절로 그 말이 나온다. “완전히 개족보구만.” 그야말로 상상 가능한 근친혼은 다 등장해. 물론 개족보라는 말 함부로 쓸 게 아닌 건 알아. 우리 나라만 해도 고려 시대때는 왕이 이모들과 결혼하기도 했으니까. 더 거슬러 신라 시대로 가면 더 심하고. 유럽의 왕가의 경우 안된 일은 이 근친혼 때문에 그야말로 안습인 유전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바보에 가까운 왕들이 속출한다는 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은 혈우병에 시달렸고 이 고통을 달래는데 신묘한 능력을 발휘해 황후의 환심을 산 게 시베리아의 괴승 라스푸틴이라는 요상한 인물이었지. 그런데 이 혈우병이 어디에서 왔냐 하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야. 니콜라이 2세의 외할머니가 빅토리아 여왕이었거든. 그런데 이 혈우병은 바로 영국 왕실에서 횡행하던 근친혼의 결과였던 거지. 어디 혈우병뿐이겠어. 언젠가 얘기했던 광녀 후아나 라 로카의 가계에는 편집증적 정신병이 있었어. 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풍당당한 왕들은 대개 어김없는 주걱턱이었는데 이게 바로 근친혼의 결과였어. 주걱턱끼리 결혼하면 주걱턱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이치. 콩 심은 데 팥 나겠어. 처음엔 그냥 특징 정도다가 나중에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2세 쯤 가면 자기 스스로 입을 못 다물 정도의 주걱턱이 돼.
카를로스 2세는 후사를 낳지 못하고 죽지.(낳을 능력이나 됐겠어.) 그 뒤 공석이 된 왕위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손자가 차지하지. 루이 14세의 부인인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오스트리아 왕비 마리 테레즈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지. 물론 순탄하게 왕위에 오른 건 아니야. 잉글랜드,(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등이 동시에 “누구 맘대로?”를 외쳤기 때문이고 세계사 시간에 배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야. 한 40만 명쯤 죽었다고 하지. 이 전쟁에서.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페가 왕위를 계승하되 두 왕국의 합병은 불가한 것으로 대충 정리됐는데 필리페 5세의 아들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 역사에 드문 영명한 군주로서 퇴락한 스페인의 재기를 위해 힘쓴 계몽 군주였지. 그런데 이 사람도 스페인 왕가에 전승돼 온 근친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암 왕가의 피는 고귀한 것이거든”. 그런데 아들 카를로스 4세는 한 덩치하는 힘 좋은 사내였지만 머리가 좀 모자랐어. 자신의 4촌남매와 결혼하게 되는데 뭘 어떻게 하지? 당황했다고 해. 그러다가 “이 바보야 여자 따위는 다 같은 거야!”라고 아버지한테 불호령을 얻게 되는데.
그런데 기묘한 건 이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왕과 그 사촌 루이자 사이에서는 무려 14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거지. 유산은 열 번. 상시적 임신 태세였다고 보이는데 부부 금슬이 좋아서? 글쎄올시다. 왕이 일생 동안 신뢰했고 죽을 때까지 끼고 있었던 고도이라는 이를 비롯해서 왕비와 염문을 뿌린 남자가 넘 많아서 말이지.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화를 보면 고야의 심술궂은 리얼리즘이 잘 드러나 있어. 카를로스 4세의 좀 맹한 인상과 왕비의 억센 인상을 보면 고야가 그리면서 어지간히 낄낄거리지 않았을까 싶지. 이 그림의 맨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페르난도 왕세자야.
얘기했던 부왕의 총신이자 (왕비의 애인?) 고도이는 나름대로의 외교 정책을 펼쳐 보지만 프랑스에게 이용만 당하지. 이를테면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 제독에게 괴멸당한 건 프랑스 해군만이 아냐. 얼마 안남았지만 그래도 왕년의 해양 대국 스페인의 해군도 끼어 있었지. 또 프랑스와 손잡고 포르투갈을 공격했다가 프랑스의 스페인 침입을 앉아서 묵인한 꼴이 됐고. 여기에 격노한 민중 반란으로 부왕은 퇴위를 선언하고 왕위를 페르난도에게 물려 주는데 나폴레옹은 이미 그럴 뜻이 아니었어.
나폴레옹은 페르난도를 소환하고 나폴레옹 면전에서 스페인 왕가는 드잡이를 벌여. 아버지는 아들에게 왕관 도둑놈이라고 욕하고 아들은 싸가지가 없이 대답하고 어머니는 자기의 총신(애인?)을 감싸는 가운데 아들을 공박하지. 나폴레옹의 머리 속에서는 이 떨거지들을 치워 버리고 자신의 혈육으로 하여금 스페인을 지배시키겠다는 생각이 섰고. “자 페르난도. 이제 왕관을 내 형 조제프에게 바쳐 주겠나. 그가 호세 1세로서 스페인을 다스릴 거네.”
스페인 왕가는 프랑스의 한 도시에 연금됐어. 그리고 나폴리 왕이자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가 스페인의 왕으로 선포된다. 1808년 5월 2일 일단의 프랑스 군대가 카를로스 4세의 자식들을 프랑스로 옮겨 가려고 시도했을 때 문제가 발생해. 마드리드 시 의회는 여기에 반대했지만 카를로스 왕의 서신이 들이밀어지자 마지못해 허락하지. 그러나 마드리드 시민들은 허락하지 않았어. 못난이 왕, 식신에 가까운 식탐으로 유명한 왕세자, 정부가 몇 명인지도 모르겠는 왕비. 미워 죽겠던 왕가였지만 나폴레옹이라는 외세의 절대 권력자의 마수 앞에서 어린 공주와 왕자는 자신들의 목숨으로 지켜야 할 대상이 된 거야. 이런 예는 우리 역사에도 있지 아마. 고종 황제의 인산을 기하여 일어난 3.1운동이라든가 역사상 최소의 존재감 순종의 장례식에 일어난 6.10이라든가.
스페인 국민들은 마침내 결사적인 봉기를 일으킨다. 상대는 유럽을 제패하고 동방의 러시아마저 무릎 꿇린 황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사령관은 나폴레옹의 매제 뮈라 장군. 봉기의 주축은 그야말로 하층민들이었어. 귀족들은 양순했고 스페인 군대도 일단 숨을 죽였다. 딱 하나 봉기에 가담했다가 프랑스군에 순식간에 진압당한 몽텔리온 포병대를 제외하면. 하지만 시민들은 무기도 없이 세계 최강 군대에 달려들었어. 이때 프랑스 군에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갔다가 데리고 온 맘루크 기병대(즉 무슬림들)도 편성돼 있었는데 이들이 시민들을 향해 반월도를 휘두르며 돌격하는 모습을 보고 고야가 그린 게 <5 2="">이야. 이건 스페인 사람들에게 충격이 컸을 거야. 무려 800년 동안을 이슬람의 지배 하에 허덕였던 스페인 사람들 아니겠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 반란을 일으키고 살해자가 된 마드리드 시민들이여 그대들로 인해 프랑스군의 피가 흘렀다. 이것은 복수를 부르게 되었다. 모든 무기를 들고 봉기에 참여하다 체포된 이들은 모두 사형에 처할 것이다.” 프랑스 군 뮈라 사령관의 포고다. 이 포고 때문에 한 열 다섯 살난 소녀가 생명을 잃어. 마누엘라 말라사나. 그녀는 재봉사였고 가위를 들고 가다가 그를 무기로 받아들인 프랑스군에 의해 죽음을 당해. 지난 2008년 스페인 정부는 독립전쟁 200주년 기념 유로 금화를 발행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 마누엘라와 앞서 말한 포병 장교들의 장렬한 최후를 담고 있지.
5월 2일과 5월 3일 프랑스군은 학살을 계속했어. 고야의 붓은 이날 역시 화폭에 담았다. 그 구도가 피카소의 한국전쟁을 비롯, 여러 번 오마쥬되고 되풀이되는 명화. 눈 코 입이 보이지 않는 검은 옷의 군대가 인민들을 학살하고 그 가운데 흰옷입은 남자가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예수처럼 그들을 응시하는 그림이 그거지. 이후 스페인 전역은 프랑스에 반대하는 봉기의 불바다에 뒤덮인다. 대규모 정규군이 사라진 상황에서 스페인 민중들은 우리 식으로 하면 ‘의병’을 결성해서 프랑스군에 맞섰고 이들이 치르는 ‘작은 전투’, 즉 스페인 말로 ‘게르릴라’는 침략군의 골칫거리가 됐고 나폴레옹의 ‘종양’으로 번진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 ‘게릴라전’이라는 새로운 전투 형태를 가져왔고.
약육강식은 동물의 세계 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한 흐름이다 도덕경 읊고 서로 사랑하라 외치는 소리가 의미 있을 때보다는 소 귀에 상대성 원리처럼 치부될 때가 월등하게 많았지. 하지만 문제는 그 강함을 무너뜨리는 건 또 대개 약함의 분노다. 약함의 슬픔이고 그 분노와 슬픔의 조합이지. 그런데 그 분노와 슬픔을 가져오는 건 다름아닌 강자의 오만과 실수다. 나폴레옹이 “저 진상들을 스페인 왕위에 앉히느니 내 형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한때 지구상에서 영국보다 먼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했던 스페인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군대 하나 없이 덤빌 테면 덤벼. 다 죽여 버리갔어.”라고 ‘사회 혼란’을 가져온 ‘불순분자’들을 ‘엄벌에 처한’ 순간 프랑스 제국 군대는 ‘게릴라전’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 거야. 이건 전쟁 뿐 아니고 우리 일상사에서도 적용되는 얘기겠지만.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ㅡ From 후배 김형민PD

All cruelty springs from weakness

○사람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We are always complaining that our days are few, and acting as though there would be no end of them.
    
○불은 금을 시험하고, 불운은 용감한 사람을 시험한다. Fire tests gold, suffering tests brave men.
    
○어렵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감히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It is not because things are difficult that we do not dare, it is because we do not dare that they are difficult.
    
○부(富)는 현자의 노예이자 바보의 주인이다. Wealth is the slave of a wise man. The master of a fool.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It is a great thing to know the season for speech and the season for silence.
    
○당신이 행한 자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당신이 받았던 호의에 대해서 말하라. Be silent as to services you have rendered, but speak of favours you have received.
    
○칭찬받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다. You can tell the character of every man when you see how he receives praise.
    
○가장 강한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자이다. Most powerful is he who has himself in his own power.
    
○참된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은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이다. One of the most beautiful qualities of true friendship is to understand and to be understood.
    
○모든 잔혹함은 나약함에서 샘솟는다. All cruelty springs from weakness.
    
○우연히 현명해지는 사람은 없다. No man was ever wise by chance.
    
○매일 밤 자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은 어떤 약점을 극복했는가? 어떤 선행을 했는가? Every night before going to sleep, we must ask ourselves: what weakness did I overcome today? What virtue did I acquire?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며 경청하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 군자이행언, 소인이설언(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공자

○군자는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군자치기언지과기행(君子恥其言之過其行) -공자

○개가 잘 짖는다고 해서 좋은 개라고 할 수 없듯,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해서 현자라고 할 수 없다. 구불이선폐위량, 인불이선언위현(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 -장자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 -탈무드(유대인의 율법서)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 -미드라시(유대인의 종교해석서)

○말은 마음의 초상? - J. 레이(폴란드 문학의 아버지)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모로코 속담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사아디 무쓸라 알 딘(이란의 현자)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며 경청하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 -올리버 웬델 홈스

좋은 마음을 먹으면 나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부처님 말씀🔷
입을 단속하여 함부로 말하지 말고
좋지 않은 말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말라.
계율이 다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좋은 마음을 먹으면
나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공연한 말이나 험담으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말라.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
입을 단속하지 않으면
도道를 이루기가 어려우니라.
<불반니원경>

Activity carries a big reward in itself. 행동은 그 자체로 큰 보상을 준다

○내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지 묻는다면 예술가로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소리치며 살기 위해서라고. If you ask me what I came to do in this world, I, an artist, I will answer you: "I am here to live out loud."
 
○진실에 입을 다물고 그것을 땅 아래 묻으면 진실은 거기서 자라날 것이다. If you shut up truth, and bury it underground, it will but grow.
 
○진실은 행진하고 있으며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 The truth is on the march and nothing will stop it.
 
○재능이 없는 예술가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작품이 없다면 재능도 가치가 없다. The artist is nothing without the gift, but the gift is nothing without work.
 
○사람들은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확실히,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모든 것을 안다고 상상하면서. One must be arrogant, indeed, to imagine that one can take everything in one's hand and know everything!
 
○사람은 인생의 전반기에 행복을 꿈꾸고 나머지 반은 후회와 두려움으로 보내지 않나요? Did not one spend the first half of one's days in dreams of happiness and the second half in regrets and terrors?
 
○아이디어 역시 하나의 행동이다. Idea is an action, too.
 
○행동하고 창조하고 환경과 싸우라. 이기든 지든 그것이 건강한 사람의 삶이다. To act, to create, to fight with the circumstances, win or be defeated - that's the life of a healthy person.
 
○화는 늘 나쁜 조언자가 된다. Anger is always a bad advisor.
 
○최소의 진보조차도 몇 년의 고통스러운 작업을 요구한다. Even the smallest progress requires years of painful work.

도서, 책, 그림, 그림책, Picture book, Drawing, Art, 국내 최고의 만화책 그림책 창작 그룹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아름답고 위대한 영웅들의 모험담을 즐겨보자!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삶을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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