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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선의 데이트

발트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친 바다 중 하나야 . 1년 중 절반 넘는 기간 동안 수온이 0도 이하로 내려가며 겨울에는 발트해 전체의 45퍼센트가 얼어붙는다. ‘역대급’이라 할 해양 인명 피해 사고라 할 사고의 무대도 발트해인 적이 많았지. 1945년 1월,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의 쇄도를 피해 피난민 1만명을 싣고 항해하던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는 소련군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어. 꼼꼼하기로 이름난 독일인들조차 “장부가 모자라” 승선 명단을 작성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니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르지. 생존자는 1300여명에 불과했다. 무려 9천4백여 명의 목숨이 발트해의 차가운 바닷물 아래로 들어간 거야. 타이타닉 호의 희생자의 여섯 배.
그로부터 반 세기 후 발트해는 또 한 번 그 무서운 얼굴을 드러낸다. 희생자는 1994년 9월 28일 발트해에서 침몰한 에스토니아 호였어. 2800톤의 길이 156 미터, 너비 28미터의 로로선이었어. 즉 화물과 승용차를 실을 수 있는 세월호와 비슷한 형태의 배다. 803명의 승객과 186명의 선원 989명이 승선했고 화물은 적재 허용량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의 최대치로 실렸어. 불길한 징조는 출발부터 있었다. 화물 적재 허용량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화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배는 약간 왼쪽으로 기운 채 항행을 시작했던 거지.
파도는 4미터에서 6미터로 높게 일었으나 그 정도는 발트해에서 특별한 파도가 못됐어. 에스토니아 호도 정상적으로 운항하는 듯 보였지. 사망자 444명을 낸 스웨덴 인들을 비롯해서 에스토니아, 핀란드, 러시아 등 각국에서 온 승객들은 에스토니아 방문 소감을 곁들이며 맥주로 축배를 들거나 밤바다의 정경을 만끽하며 배 위에서의 밤을 평온하게 맞았을 거야. 문제가 발새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 경.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시경 선체의 아래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쾅! 그리고 1시 10분 경 승객들이 느낄 정도의 소리와 함께 선수 쪽에서 램프도어가 파손된 듯 바닷물이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했다. 램프도어란 로로선 (차량을 싣는 배)에서 차량 진입을 위해 들어올려지는 바로 그 부분이다. 배는 순식간에 기울었어. 그리고 세월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1시 20분 경 찢어지는 목소리의 선내 방송이 ‘’비상‘임을 알리긴 했는데 대다수의 승객들은 그 방송을 이해하지 못했어. 영어나 스웨덴어가 아닌 에스토니아 어로 방송이 됐으니까.
배는 20분도 못가서 거의 90도로 기울어 버렸어. 승객들은 대부분 정전으로 암흑이 된 선실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지. 90도로 기울어지고 어둠에 휩싸인 배에서 빠져나올 방도는 없었어. 한 생존 스웨덴 청년의 인터뷰는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에스토니아 호의 마지막 무전은 “침몰 중! 엔진이 꺼졌다!” 였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1시 50분. 에스토니아 호는 다른 배들의 레이더 화면에서 사라지고 말아. 1시간도 채 안돼서.
구조 작업은 필사적으로 이뤄졌어, 침몰 20분 뒤 도착한 인근의 배들은 구명정을 투하했고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날아온 해군 헬기들은 한국 해경과는 다르게 목숨을 건 이착륙을 불사하며 바다 위에 떠 있던 승객들을 구했어. 그렇게 구한 사람이 137명. 발트해의 수온은 10도 남짓으로 매우 낮았고 저체온증을 이기지 못해 구조된 뒤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고 바다에 떠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죽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850여명이 죽었어.
그 침몰의 아수라장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공포에 질려 울부짖다가 죽어갔겠지. 하지만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듯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다 연출하며 본연의 모습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에스토니아 호의 비극의 틈새 사이에서 피어난 한 젊은 커플의 이야기는 그 한 예가 될 게다.
켄트 할슈테트와 사라 헤드리니어스. 이 스웨덴 남녀는 운명의 9월 28일 에스토니아 호에서 처음 만났어. 둘은 서로 호감을 느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발트 해의 밤을 지새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하늘이 무너지는 난리를 당한 거야. 삽시간에 배가 기울고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왔을 때 켄트가 사라를 부른다 사라! 충격과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던 사라는 켄트를 돌아봤지. 그런데 켄트는 뜻밖의 말을 토해 낸다. “여기서 살아남으면요. 스톡홀름에서 저녁 같이 해요.”
참 분위기 판단 못하는 데이트 신청 같기도 하지만 아마 막상 그 자리에 있었으면 너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답했을 거야. 그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면 누구와 데이트를 하든 무슨 상관이겠어. 또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남자라면 급호감이 들 수도 있을 게고. 둘은 데이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밀려드는 바닷물과 싸우다가 함께 차가운 발트해로 뛰어든다.
둘은 구명 뗏목을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올라타는 데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저체온증이었어. 이미 흠뻑 젖어버린 그들의 몸을 겨울 바다 바람은 칼질하듯 톱질하듯 저미고 썰어 냈다. 와들와들 떨던 사람들이 곧 고개를 떨구고 죽어갔어. 켄트와 사라는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서로를 끌어안고 버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했을지도 모르지. “사라 졸지 마요! 졸면 죽어!” “켄트.... 저녁 식사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떡하죠?” “이러지 마요 사라. 스톡홀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이랑 스테이크 썰게 해 줄 테니까!” 뭐 이런 식으로.
파도가 크게 일면서 구명 보트마저 뒤집히고 말았어. 거기 타고 있던 사람들은 바다로 곤두박질쳐 들어가지. 한참 뒤 기적적으로 사라는 물 위로 떠올랐어. 아마 사라는 가장 먼저 켄트의 이름을 불렀을 거야. 하지만 켄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켄트를 부르는 사라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얹혀질 무렵에야 갑자기 머리 하나가 시커먼 물 위로 솟아올랐어. 켄트였어. 이때 사라는 막 데이트 신청을 받은 생면부지의 남자가 아니라 10년은 사귀며 정이 들대로 든 남자가 물 위로 솟아오른 기분이었을 거야.
다행히도 둘은 무사히 구출된다. 그 보트에 있던 14명 중 여섯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리고 병원에 치료 받던 중 몰려든 기자들에게 사라와 켄트는 사건 현장을 증언하면서 자신들의 사연도 밝혔나 봐. 사라는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니까 말이지. “물론 켄트의 데이트 신청은 아직 유효합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불구덩이 속에서건 물지옥 앞에서건 진퇴양난에 첩첩산중의 위기에서건 오리무중 황당무계한 미로 속에서건 닿을 사람과 닿고 피울 꽃은 피워 가는 법이야. 켄트와 사라처럼.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까지는 묻지 마라. 그 인연이 굵었다면 지금쯤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을 것이고 좀 가늘었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 그날의 찢어지는 비명들과 밀려드는 물의 차가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체온을 나누던 사람의 기억이 그리 쉽게 잊혀지기야 하려고.
ㅡ From 후배 김형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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