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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마음이 싹터서 꽃피는 순간까지가 그 황금시대요 절정이다

  < 시인과 아내 >
“연애는 연애되는 순간 그 자체가 정점(頂點)이다. '황금시대는 황금시대가 오기 바로 직전에 있다'는 말이 있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는 노랫가락도 있지만, 이 두 마디 말이야말로 연애 미학에 있어서도 그대로 하나의 공리(公理)가 된다. 다시말하면 그리운 마음이 싹터서 꽃피는 순간까지가 그 황금시대요 절정이다...... (중략)
연애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그 하나는 결합의 선(線)이니, 결혼하여 부부애, 육친애로 변성하는 길, 다시 말하면 '변성적인 사랑의 코스'요, 다른 하나는 결별의 선이니, 떨어져서 서로 사모하며 영원히 맺어지지 않는 연인애(戀人愛)로 환원하는 길, 바꿔 말하면 '슬픈 사랑의 코스'가 그것이다. 슬픈 사랑의 코스에는 겉으로는 결합하면서 실상은 영원히 떠나는 방향으로 정사(情死)라는 것이 있고, 변성되는 사랑의 코스에는 벌어지면서도 만나는 길을 막지 않는 우정으로의 길도 있다.
짝사랑은 연애 감정으로는 최고 경지지만, 형태미(形態美)로는 변상적(變常的)인 것이고 장난사랑은 겉보기는 연애 같지만 내용미로는 천박한 것이다. 풋사랑은 앳되고 울고 싶은 것이 좋고, 청신하고 서정적이어서 좋다. '늙은 사랑'은 구수하고 슴슴한 것이 좋고, 소박하고 관조적(觀照的)인 것이 좋다.“
뭔가 연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을 거친 것 같지만 뭔가 또 연애와는 걸맞지 않고 무뚝뚝함이 뚝뚝 떨어지는 단어들로 구성되기도 한 이 연애론(?)을 쓴 이는 누굴까? 당연히 유명한 시인이니까 한 번 맞춰 봐라. 맞추면 내가 전복죽 한 그릇 사 주지. 하나 둘 셋. 이 사람은 조지훈이다. 하지만 이 양반은 그렇게 화려한 연애를 못해 본 걸로 알아. 나이 스무살에 결혼한 아내와 해로한 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그와 청록파 동인이었던 박목월의 자유분방함과는 사뭇 결이 다른 진짜 ‘선비’였으니까.
그는 나이 열 일곱 살 때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이 옥사했다. “만주의 호랑이”라고 불리운 맹렬 독립운동가였지만 그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어. 그를 거둔 게 만해 한용운이었어. 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지은 집 심우장 (길상사 가는 길에서 좀 다르게 길을 잡으면 철거 직전의 옛 집들 사이에 지금도 있다)에 그 영구를 모셨는데 조지훈은 험악한 일경의 눈초리에 아랑곳없이 아버지와 함께 찾아가 조의를 표한다.
어렸을 때 배운 한학과 조선어학회 일을 하면서 익힌 넓고 깊은 조선어 이해, 일제 때 붓을 꺾고 은둔했던 절에서 접한 불교 등 그야말로 다양한 정서와 경험과 학문을 몸에 둘렀던 그의 시 세계는 한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이라고 해. 당연하게도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그의 ‘승무’를 읽으며 참 우리 말이 이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감탄했던 기억은 명징하다. 얄븐사 하이얀 고까른 고이저버 나빌레라. 소리나는 대로 적어도 보기도 했었으니.
하지만 그는 위대한 시인이면서 서슬 퍼런 선비였어. 언젠가 가톨릭 대주교와 얘기를 나누면서 대주교가 “인간은 담뱃불만 스쳐도 그걸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라고 하자 조지훈이 “(살을 지지는) 인두가 식었다 더 달궈서 가져와라.”고 했던 성삼문의 예를 들어 반박했어. 대주교가 시큰둥하자 조지훈은 성냥 대여섯개에 불을 붙여 손등에 올려 놨다네. 무슨 장발장도 아니고! 전쟁 중 종군작가단 시절 문인들이 음주 후 노래를 하는 걸 보고 격노한 군인이 총을 들이대자 그 뺨을 후려갈기며 “총으로만 애국하는 줄 아느냐?”고 호통치고 사과받아낸 일화도 있고.
유명한 <지조론>을 통해 곡학아세하고 권력에 빌붙는 행태를 거침없이 비판했고 정권과는 이승만 정권이든 그 뒤의 박정희 정권이든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데 딱 한 마디만 가져와 볼게.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자기만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도자와 추종자를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실망하였는가.” 누굴 말하는지 알겠지? 이승만. 뭐 지금 감옥에 있는 각하들도 비슷하다고?
이 꼿꼿한 선비는 나이 스물에 독립운동가이자 역시 경북의 꼬장꼬장한 선비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는다. 이름은 김위남이었는데 이 시인 남편은 그녀에게 ‘난희’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아내는 남편을 두고 이렇게 말하더군. “결혼하면서부터 남편을 스승처럼 존경하고 살았었지요.” 글 쓸 때 애들 떠들면 버럭 호통을 치고 몸은 약해서 툭하면 피를 토하면서도 누가 벽돌로 찍으려 해도 (좌익학생이 그랬대) 군인이 총을 들이대도 “네 이놈!”이 먼저 나오는 이 꼬장꼬장한 양반이랑 살기가 여간 퍽퍽했겠어. 거기다가 3남 1녀를 남겨 둔 채 나이 마흔 여덟에 훌쩍 떠나 버렸으니 야속하기도 할 거고.
그런데 부인 김난희 여사는 칠순에 접어들어서 남편을 재발견하게 돼. 어려서 서예 배우느라 붓을 배웠지만 그 뒤로 거의 손에 든 일조차 없었을 붓을 다시 잡게 된 거야. 남편의 시를 글씨로, 서화로 옮기는 작업이었지. “사람 마음이 늘 그렇잖아요. 까닭도 없이 마음이 시끄럽고,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그래서 수양삼아 쓰기 시작했어요. 나이 들어 조 선생 글 읽어보니 참 좋대요. 젊어서 곁에 있을 땐 몰랐는데, 죽을 때 가까워 그런가, 그 양반 남기고 간 시를 읽으면 모났던 마음이 둥글둥글해져요”.
함께 있을 때는 범접하기 어려웠던 남편을 죽은 지 수십년 뒤에야 재발견하는 한 할머니. 젊어서는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고 해. 하지만 남편의 글을 자신의 붓에 담아 옮기고 거기에 그림도 엮으면서 마치 함께 사진을 찍는 듯 하다며 좋아하셨다고 하네. 이분의 작품 역시 그저 심심 파적의 취미 수준은 넘어 있어. 원래는 깡깡 촌이었지만 요즘은 그래도 고속도로가 많이 뚫려 가기가 좀 편해진 경북 영양의 조지훈 문학관에는 김난희 여사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남편 말로 ‘늙은 사랑’은 구수하고 슴슴한 것이 좋다 했는데 남편 초상화 앞의 아내의 웃음은 참으로 구수하고 슴슴하다. 오랫 동안 잊었던 자신의 재능을 남편의 시를 쓰면서 다시 발견하고 그를 통해 울퉁불퉁한 마음을 다스리고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남편을 추억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은 또 얼마나 소박하고 관조적인지. 단지 “그리운 마음이 싹터서 꽃피는 순간까지가 그 (사랑의) 황금시대요 절정”이라는 말에는 다소 이의를 제기한다. 사랑의 황금기가 그렇게 짧은 것 같지가 않네. 김난희 여사를 보면.
ㅡ From 후배 김형민PD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르데차이 아리엘레체였다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봉기 >
 솔직히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는 이제 별 흥미가 없다, 워낙 어려서부터 많이 봐 온 주제이기도 하고 둘째는 요즘의 이스라엘이 예전 자신들의 선대가 당한 그대로를 팔레스타인에게 베푸는 꼬락서니가 너무 불쾌하기 때문이기도 해. 하지만 내가 싫증이 나건 물려서 고개를 젓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강제수용소는 있었고, 그것도 많이 있었고, 수백만 규모의 인류가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거나 쓰러져 죽거나 가스실에서 가스 샤워를 받고 소각장에서 잿더미가 돼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
하지만 효율적인(?) 인종 말살 시스템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유태인들을 한 방에 몰아 넣고 자동차 배기 가스를 엄청나게 투입하기도 했지. 당연히 시간도 걸리고 고통도 길고 나찌 입장에선 비효율적이었기에 또 다른 걸 궁리했고 그 결과 나온 게 치크론B라는 독가스였지. 폴란드 등 동부 유럽에 집중적으로 세워진 유태인 강제 수용소는 곧 거대한 살인 공장으로 화했어.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유태인을 분리 수용하던 각지의 ‘게토’에서 유태인들을 대거 이송하기 시작해.
게토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게토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었어. 바르샤바는 유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중의 하나였지. 나찌는 이 바르샤바의 40만 유태인을 10만명이 들어설까 말까 하는 면적에 밀어넣고 콘크리트 담을 쳐 버린다. 1940년 11월의 일이었지.
영등포 구로 금천구에 서울 시민을 다 몰아넣은 정도였을 거야. 당연히 게토 안에서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전염병이 발생했고 유태인들은 엄청나게 죽어 나갔다. 그를 탈출하려는 유태인들을 막기 위해 총살령이 발동됐고 이미 10만 명이 그 안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어. 어떤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죽으면 그냥 하수구에 버렸다고 해. 묻을 땅도 불태울 연료도 구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더욱 다급한 문제가 닥친다. 살인공장들, 즉 강제수용소들이 완성되기 시작했고 유태인들은 노예선의 노예들처럼 기차에 빽빽이 들어찬 채 수용소로 끌려간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그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려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또 한편으로 사람들은 믿지 않았어. “사람들을 끌고 가서 독가스를 뿌려서 죽여서 태워 버린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어” 유태인들은 유언비어로 믿고 싶었지만 또 그래서 별 저항도 없이 기차에 실려 가자는 대로 갔겠지만, 그 엄청난 일이 비밀 속에만 묻힐 수 있었겠어.
유태인 게토 안에는 유태인들의 지도자가 있었어, 일종의 자치 기구의 장이랄지.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지도자로서 책임감도 있고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었어. 그러나 그는 수용소의 실상을 알면서도 독일군과 협상하여 수용소행 사람들의 수를 줄이거나 게토 안에서 나오는 희생을 줄이려고 발버둥칠 뿐이었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가 아니라 “저래 죽는 것도 문제지만 이래 죽으려다가는 다 죽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
하지만 몇 사람의 생각은 달랐어. 어차피 우리들은 멸종당한다. 그 전에 찍소리나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르데차이 아리엘레체였다. 그와 그 동료들은 봉기를 준비한다. 마침내 1943년 4월 19일 유태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봉기를 일으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에 폴란드 지하 저항 조직에서 사정사정해서 얻은 수십 자루의 총, 독일군에서 훔친 총과 수류탄, 유리병과 기름, 거기에 엉성하고 말라 비틀어진 남녀가 도전장을 내민 거지.
놀랍게도 이들은 독일군의 살인적인 진압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버텨 내는 대단한 성과를 거둬. 진격해 오는 전차에 화염병을 던지고, 화염방사기에 온 몸이 불타면서도 독일군에게 달려들고 어설픈 폭탄을 터뜨려 독일군을 쓰러뜨렸지. 이들은 자신들이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을 거야.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시대도 아니고 애급의 바로보다 300배는 더 강력하고 천 배는 더 강퍅한 독재자의 군대를 어떻게 당해 낼 수 있었겠어. 그들은 기적조차 바라지 않았어. 그 이유는 모르데차이 아리엘레체의 절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야.
“우리의 슬로건은 이것이다. ‘우리는 인간답게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즉 그들은 이기기 위해, 살기 위해 봉기한 게 아니라 짐승같이 고분고분 서 있다가 도살장으로 양순하게 들어가서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봉기했던 거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우리는 그래도 사람이다 하면서 총을 쏘고 화염병을 끼얹고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며 천하의 나찌 친위대를 격퇴시키기도 했던 거야. 결국 모르데차이는 진압이 완료되기 8일전 5월 8일 그가 은신하고 있던 벙커가 폭파되면서 전사한다.
그는 봉기 후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기뻐해. “내 꿈은 이루어졌다네 친구. 유태인들의 저항조직이 실제로 이루어졌어. 우리의 저항이 ‘사실’이 된 거라구.” 이 스물 셋 다혈질 청년은 단지 “우리는 저항했다.”는 사실을 만들기 위해서 일어섰던 거였지.
그 엄혹한 게토에서도 소수의 유태인은 하수구를 통해서였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다시 바르샤바로 돌아왔어. 2009년 세상을 떠난 마지막 생존자 마렉 에델만은 이렇게 그 이유를 얘기하네. “이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비참하게 다 죽더라도 한 명은 이 자리에 남아 있어야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지.” 마치 기형도의 시 구절 같지 않니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아무리 어둡고 무서운 시기였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눈 내리깔고 손 모아쥔 채 자비만을 구하지는 않았고 하늘이 닿고 땅이 울리게 잔인한 강철군화든 소리없이 숨을 틀어막아 버리는 교묘한 손길이든 누군가는 움직이고 저항하면서 그들이 사람임을 알리고 우리에게도 우리가 사람임을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봉기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1943년 5월 16일 막을 내렸다.
ㅡ From 후배 김형민PD

당신은 그에게 있어 다정한 친구이자 수호천사입니다.

개 한 마리가 달리는 구급차를 미친 듯이 쫓아갔습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는 매우 빨랐지만
개는 포기 하지 않고 병원까지 달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피투성이 남자가 수술실로 옮겨졌고
개는 병원 입구에서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당했습니다.
수술실에서 치료받는 남자는 브라질 상파울루주(州)에서
그 개와 함께 지내던 노숙인이었는데 그날 싸움에 휘말려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실려 온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남자는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만 치료 중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반려인의 죽음을 알지 못한 개는
병원 입구에서 두 달이 넘도록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개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병원 관계자들이
먹을 것과 쉴 곳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동물보호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개를 길러줄
새 가족을 찾아 입양을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개가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관계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개는 새 주인의 집을 탈출해서 어느새 다시
병원 입구로 돌아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개는 병원 앞에서 아직도 죽은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몸이 크든 작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강아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똑똑하거나 유명하지 않더라도
뛰어난 말주변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훌륭한 운동선수가 아니라도
얼굴이 못생겼어도
강아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강아지는 당신을 지금까지 세상에서 만나본
최고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에게 있어 다정한 친구이자 수호천사입니다.
- Louis sabin -

# 오늘의 명언
개에게 삶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마음을 바치는 것'
– J.R 에컬리 –

정성과 마음을 다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서 정성과 진실한 마음을?더욱더 발견하게 된다. - 톨스토이 -

남편의 거짓말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산에서 약초를 캐고 아내는 동네 허드렛일을 하며?가난하게 살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는?그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약초꾼인 남편은 온갖 약을 구해 아내에게 먹였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산삼을 구해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고 결심하고 산을 뒤졌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산삼은 찾지 못하고 도라지만 캐고 돌아온 남편은 창백한 얼굴로 마당에 쓰러져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기겁한 남편은 급한 마음에 도라지 뿌리를 들고 아내에게 먹이며 말했습니다.
"여보. 정신 차려. 내가 산삼을 캐왔어. 이걸 먹고 어서 정신 차려."
남편의 외침에 눈을 뜬 아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 흙도 털지 않은 도라지를 잔뿌리까지?남김없이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라지를 먹고 며칠이 지나자
아내의 병이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기쁘면서도 아내에게 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실은 그때 먹은 것은 산삼이 아니라 도라지였다고 실토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날 제가 먹은 것은 산삼도 아니고 도라지도 아닙니다. 산삼보다 훨씬 귀한 당신의 사랑을 먹었으니 어찌 병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내의 말에 남편은 아내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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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약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아내는 남편이 준 약이 산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인지 깊이 느껴졌기에 병이 치료된 것은 아닐까요?
# 오늘의 명언
정성과 마음을 다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서 정성과 진실한 마음을?더욱더 발견하게 된다.
- 톨스토이 -
출처 : 따뜻한 하루

We all make mistakes, but everyone makes different mistakes.

○고귀함이야말로 왕을 만드는 것이기에 심지어 가난할 때에도 나는 왕으로 살았다. Even in poverty I lived like a king for I tell you that nobility is the thing that makes a king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실수를 한다. We all make mistakes, but everyone makes different mistakes.
    
○마음이 순수한 사람만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Only the pure in heart can make a good soup.
    
○운명은 사람에게 인내할 용기를 주었다. Fate gave to man the courage of endurance.
    
○비밀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숨겨야 한다.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Hide your secret even from the closest friend; learn to be silent.
    
○악보를 틀리게 연주하는 것은 넘어갈 수 있다.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To play a wrong note is insignificant; to play without passion is inexcusable!
    
○음악은 모든 지혜와 철학보다 더 높은 계시다. 음악은 영혼이 살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전기적 토양이니까. Music is a higher revelation than all wisdom and philosophy. Music is the electrical soil in which the spirit lives, thinks and invents.
    
○음악은 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중재자다. Music is the mediator between the spiritual and the sensual life.
    
○음악은 인류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위의 지식세계로 들어가는 무형의 문이다. Music is the one incorporeal entrance into the higher world of knowledge which comprehends mankind but which mankind cannot comprehend.
    
○내 가슴과 영혼에 있는 것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음악의 이유다. What I have in my heart and soul -must find a way out. That's the reason for music.
    
1827년 오늘(3월 26일)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우레가 울리고 번개가 치던, 오스트리아 빈. 병상의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 혼수상태에서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하늘을 향해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맥없이 픽 쓰러졌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줄어들다가 곧 멈췄습니다. 악성(樂聖)은 57세의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음악사학자들이 수많은 추정을 했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베토벤의 사인으로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경변증을 꼽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식사 때마다 와인 1병씩을 마셨으며 소화불량과 만성설사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베토벤에게 난청이 온 것도 감기 끝 무렵 중이염이 왔는데도 술을 계속 마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토벤이 술을 끊었더라면 교향곡 10번도 들을 수가 있었을 텐데…. 어쨌든 베토벤은 음악을 사랑했고 치열하게 살다가 이날 ‘들을 수 있는 세상,’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의 명언을 통해 삶과 예술, 건강과 음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한 주의 첫날 되기를….

‘질량보존의 법칙’을 비롯하여 화학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러 법칙들을 발견

< 천재 라브와지에와 그 아내 >
 피를 보지 않는 혁명이란 거의 없을 거야. 혁명이란 자체가 누르고 밟고 덮고를 무시로 또 무한 반복한 뒤에 터져나오는 끓는 물줄기 같은 거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다칠 수 밖에 없지. 혁명이 성공하여 그 희생들이 역사적 밑거름이 됐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불의 격랑에 휘말려 허무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면면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치부하고 원래 혁명이 그런 거야 하고 잘난체하는 것 또한 좋은 자세는 아닐 거다. 내가 그만큼 당해 보지 않았고, 저 ‘간악한’ 적들의 폭력을 받아보지 않아 그런진 모르겠으나 “먼훗날 해방의 그날에 반동의 피로 붉게 도색하리라.” 같은 노래 가사는 도저히 수용이 불가했으니까.
그렇게 많은 유혈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다. 프랑스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죽어간 한 천재 화학자도 그렇지. 이름은 라브와지에. 기억력 하나는 나보다 나은 너희니까 아마 쉽사리 화학시간에 배운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거다. 화학을 미와 양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나로서는 그닥 달갑지 않은 이름이다만. ‘질량보존의 법칙’을 비롯하여 화학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러 법칙들을 발견하고 그를 입증한 천재 화학자였지.
잠깐 서력 기원 시대로 올라가 보자. 예수의 제자로 마태복음의 주인공 마태의 직업이 뭐였는지 아니? 그는 세리였어. 즉 세금 걷는 관리였지. 예수는 이 땅에서 죄인들인 세리와 창녀의 친구임을 자처했지. “분명히 말하지만 세리와 창녀가 먼저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거야.”라고 바리새인들에게 얘기해서 거품을 물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창녀는 그렇다고 치고 세리가 왜 문제가 될까? 당시나 프랑스 혁명 때에나 국세청 같은 관청이 없었다고 해. 그러니까 민간인들에게 그 임무를 민영화(?)했고 그들은 완장을 차고 비슷한 사람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업을 삼았으니 그 원성이 자자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니. 라브와지에가 바로 이 세금징수인조합의 조합원이었어.
그는 원래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관심은 법전보다는 실험실의 비이커에 있었어. 화학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던 그가 세금징수인이 된 건 누구의 지원도 없이 혼자 모든 실험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상황과도 연관이 있어. 예술가들은 귀족의 후원이라도 받았지만 어느 귀족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화학 실험에 돈을 바를 수 있었겠어. 결국 라브와지에는 자력갱생을 해야 했고 그 수단으로 동원한 게 세금징수인이었지.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낮에는 세금을 거두러 다녔고 거기서 생긴 돈으로 실험 자재롸 재료를 샀고 밤에는 연구에 몰두한다. 주세야독?
세금징수인조합은 그에게 돈만 준게 아니라 평생의 은인이자 사랑도 줬어. 바로 직장 선배의 딸이자 열 세 살이자 연하이자 당시 나이 열 네 살의 (이런!!!!)마리와 결혼한 거지. 뭐 춘향이가 몽룡이를 만난 게 열 여섯이니 마냥 애라고 말하긴 어렵겠다만. 그런데 이 여자는 라브와지를 평생 사랑했을 뿐 아니라 유능한 조력자이기도 했어. 아 그녀가 퀴리 부인같은 라브와지에 부인이었던 건 아냐. 그녀는 과학에 그렇게 큰 이해는 없었어. 하지만 라브와지에가 실험실에 틀어박힐 수 있었던 일요일, 남편 옆에 붙어서 화학 실험을 도왔고 노트에 결과를 일일이 적고, 실험 기자재를 정리하는 등 뒷수발을 다 들었지. 거기다 그녀는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는데 라브와지에의 역사적인 저서 <화학의 기초>에 실린 삽화들은 몽땅 그녀의 솜씨라고 하네. 거기다가 외국어도 능통해서 외국의 학설들을 번역하고 남편의 주장을 외국어로 옮기는 구실도 했다고 해. 이런 유능한 조교가 어디 있었겠어.
그렇게 알콩달콩 또 열심지성으로 세금징수원과 화학자로, 그리고 사랑스런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던 그들 부부에게 프랑스 혁명이 닥쳐 온다. 부르봉 왕조를 위해 일한 세금징수원에게는 자기 코로 자신의 피비린내를 맡을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지. 특히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시작되면서 라브와지에의 목숨은 경각에 달한다. 라브와지에는 법학을 전공한 처지로 열변을 토하며 자기 변호를 하지만 공포 정치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살려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실험을 앞두고 있으니 나를 조금만 더 살려서 그를 완성하고 죽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재판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공화국에는 과학자가 필요없다.”
프랑스 혁명 당시 목이 잘린 롤랑 부인은 “자유!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행해졌던가!”라고 절규했다고 하는데 “공화국”이라는 이름도 참 여러 사람을 집어삼킨 괴물의 별명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남편 (이 둘은 같은 날 목이 떨어진다)의 풍전등화같은 목숨 앞에서 필사적이 된건 마리 라브와지에. 그녀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주했어. 하지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혁명의 적으로 몰리면 자기 위에 기요틴이 키스할지 모르는 마당에 세금징수원 라브와지에를 위해 나설 사람은 드물었어, 심지어 “저 머리를 치는 건 한순간이지만 저 머리를 만드는데에는 100년이 걸린다.”고 한 수학자 라그랑쥬도 라브와지에 부인의 호소에 모르쇠한다. 아내는 자신의 호소를 거절하는 이들의 명단을 마음 속에 돋는 칼로 새겨 둔다.
라브와지에는 처형 당시 이런 유언을 남긴다고 해. “나는 충분히 길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더 이상 무엇을 원하겠는가? 내게 내려진 이 상황은 나에게 아마 늙은이로서의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나는 늙은이로 죽지 않을 것이고 이것 또한 나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달관한 한 천재의 푸념이자 자신의 열정과 두뇌, 그리고 사랑스런 조력자와 함께 인류 과학사에 잊지 못할 공헌을 한 과학자의 쿨한 귀거래사.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과학자였어.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단두대에 오른다.
“내가 목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계속 눈을 깜박일 테니까. 얼마나 깜박이는지 시간을 재 보게” 사람이 목이 잘려나간 후 얼마나 생존하는가, 의식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길은 아마도 이 방법 밖에는 없겠지. 라브와지에의 머리는 15초동안 눈을 깜박였다고 전해. 라브와지에 사후 라브와지에 부인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돼. 그녀 역시 기요틴의 칼날 아래 엎드리기 직전, 공포정치가 끝난다. 로베스피에르가 체포됐고 그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나간 거지. “공화국에는 과학자가 필요없다.”고 한 재판장도 그 떨어져 나간 머리가 자신의 몸뚱이를 보는 꼴이 되고 말아.
풀려난 아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라브와지에의 연구 기록을 돌려 받는 일이었어. 혁명 정부는 라브와지에의 목을 친 후 그 모든 자료와 기록을 없애버리려고 압수했거든. 그런데 인류에게 고마운 일은 로베스피에르가 먼저 죽었다는 것. “남편의 실험 자료를 돌려 주세요.” 애타게 부르짖은 마리 라브와지에에게 그 기록은 단순한 과학 노트가 아니었을 거야. 그 후 재혼하기도 하지만 끝내 라브와지에를 잊지 못했고 다시 이혼해 평생 혼자 살았던 마리에게 그 기록이란 행복한 결혼 생활의 증좌이자 자신의 재능도 함께 발휘됐던 소중한 보물이었겠지. 그리고 라브와지에의 시신을 수습하여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이때 말로는 라브와지에를 아까워하면서 아내의 구명 호소에는 입을 씻었던 라그랑쥬도 참석했다고 해. 또 다른 화학자 동료들도. 마리는 그들에게 시선도 두지 않았다고 하네. “남편의 연구에 숟가락 하나 얹을 생각하지 마세요.” 하는 가시 돋힌 말과 함께.
마리 라브와지에는 화학자는 아니었지만 (남편에게서 교육을 받긴 했겠지만) 그녀가 가진 재능과 사랑은 라브와지에의 연구를 정리하고 꽃피우고 결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녀를 화학의 아버지 라브와지에에 빗대 ‘화학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해. 그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인류 과학사의 큰 보물을 분실했을지도 모르지. 혁명은 짧고 사랑은 길다.
1783년 6월 24일은 그가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한 날.
ㅡ From 후배 김형민PD

우리 몸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다 믿는다

우리 몸에게 어떤 말을 하는 지에 따라 신체 건강이 좌우된다.

우리가 하는 말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결정적이다.

무심결에 ‘이 무릎은 결국 고장이 날거야.’

‘그 애가 내 심장을 찢어 놓았어’라는 식의 말을 하다보면

결국 무릎이나 심장에 병이 생긴다.




- 바버라 호버먼

도서, 책, 그림, 그림책, Picture book, Drawing, Art, 국내 최고의 만화책 그림책 창작 그룹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아름답고 위대한 영웅들의 모험담을 즐겨보자!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삶을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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