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하린의 편지 >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고백>이라는 영화가 있어. 이브 몽탕 주연. 아는지 모르겠지만 가수와 영화 배우로, 연애 박사로 유명했던 이브 몽탕은 맑시스트로서의 신념을 평생 견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 하지만 <고백>은 그 맑시즘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는 동구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 영화야. 이 영화에는 체코 공산당 내의 숙청 과정이 등장하는데 트로츠키주의자 등 온갖 혐의를 뒤집어쓴 이들이 재판받는 과정이 나와. 이들은 자신들의 행적을 뼈저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너그러운 당이 그를 용서할 것이라는 회유를 받고 자신들의 죄상을 준엄하게 고발하지만 바로 그 죄목으로 목이 매달리고 말지.
이 비겁한 회유와 악랄한 재판 방식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즐겨 사용된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에서 남로당 숙청할 때 남로당원들은 뻔하고도 또 뻔한 ‘죄’를 자백한 뒤 죽어갔지. 이 악풍악습의 연원은 스탈린 치하 소련의 대숙청 기간으로 거슬러 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빨을 뽑고 손톱을 뭉개는 고문을 통해서, 또는 “당은 당신을 아끼오. 과오를 저질렀다 한 마디면 하면 되오.”하는 회유를 거쳐 자신들의 죄상을 고백한 뒤 뒤통수에 총알을 맞거나 목이 매달렸지.
러시아 혁명사에 등장하는 쟁쟁한 이름들이 수없이 사라졌다. 평생을 혁명에 바친 혁명가들과 그 가족들이 하루 아침에 반동분자가 돼서 재판정에 서거나 재판도 없이 죽어갔지. 그 가운데 최고급의 인재를 꼽을 때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있지. 1888년 9월 27일( 러시아력으로) 태어난 니콜라이 부하린이라는 사람이야. 이병주 소설 <지리산>을 보면 한 식민지 조선인이 부하린의 죽음을 들며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등장해. 혐오감을 줄 만도 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허무하게 쟁쟁한 공산주의자들이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죽어갔지만 부하린은 그 가운데 우뚝 선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공산주의자로서의 유능함과 활동상에 대해서는 검색 한 번으로 알아보기 바란다. 열 번도 더 얘기했지만 그런 건 내 글에서 논할 바 아니니까. 좀 다른 얘기지만 혁명가들은 유난히 로맨스가 많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의열단 청년들이 천하의 멋쟁이로서 뭇 중국 조선 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은 한 예일 뿐이고 모택동을 비롯해 중국의 혁명가들도 마찬가지고 (주은래 정도는 예외로 하자) 러시아 혁명가들도 그랬어. 부하린도 결혼을 세 번씩이나 한 여복 많은 사람이었지. 그게 왜 여복이냐고 물으면 뭐 할 말 없다 넘어가자.
처음엔 사촌 여동생, 두 번째는 동료 혁명가의 여동생이었지만 두 번 다 이혼으로 끝났지. 두 번씩이나 장가를 간 이 홀아비, 하지만 ‘두뇌만큼은 섹시한’ 이 중년의 혁명가에게 한 10대의 꽃다운 처녀가 연정을 품지. 안나 라리나라는 여자였어. 그녀 역시 혁명가 집안 출신이었고 레닌이 가장 신뢰한 보좌관 중의 한 명인 유리 가린의 양녀였어. 스탈린이나 레닌의 무릎 위에서 재롱을 피우면서 자란 여자였지. 그런데 이 여자가 부하린한테 꽂힌 거야.
안나는 가슴 설레며 쓴 연애 편지를 아버지뻘의 부하린에게 연신 전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고 부하린도 이에 화답하게 된다. 뭐 나 같아도 화답하고도 남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안나가 이 편지 좀 전해 주세요...... 하며 수줍게 편지 배달을 맡긴 사람 중에는 그 이름도 끔찍한 이오지프 스탈린도 있었다는 사실. 쓰루오카 히토시가 쓴 <마이너리티 세계사>를 보면 45세 부하린과 19세 안나가 결혼하던 날 스탈린이 술 취해서 이런 말도 했었다는군. “부하린 자네가 또 이겼네.” 스탈린도 마흔 살에 열 여덟 살 신부를 맞은 적이 있는 입장에서 뭐 크게 부러워할 일은 없었겠지만 스탈린도 안나에게 흑심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
부하린은 스탈린에게 맞서다가 쓴맛을 본 이후 납작 엎드려 있었지만 스탈린이 언젠가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던 것 같아. 프랑스 작가 로망 롤랑에게 “스탈린이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푸념했다고 하니까. 아니나다를까 레닌의 관을 함께 들었던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가 숙청당한 뒤 스탈린의 칼날은 부하린을 향해. 그는 “고리키를 독살하고 레닌과 스탈린을 암살하려 했으며 제국주의 국가에 소련 국토를 헌납하려 했다.”는 황당한 누명을 쓰고 죽게 돼.
스스로도 예상했던, 그러나 황망했던 죽음을 앞두고 부하린이 가장 걱정한 건 그의 나이 어린 아내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이었지. 무려 50년 넘게 소련 내무성 서랍 안에 잠자고 있다가 세상에 나온 부하린의 편지는 혁명가로 평생을 지낸 한 남자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곳곳에 담고 있어.
“(전략) 나는 당신이 염려되오. 다른 사람들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염려스럽소. 당신은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마오. 소비에트 연방의 위대한 사업은 살아 있고,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 개개인의 운명은 위대한 사업과 비교했을 때 덧없고 가벼운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시오. 거대한 시련이 당신 앞에 있을 거요. 사랑하는 그대, 당신에게 간절히 바라건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혼의 현(鉉)들을 팽팽히 가다듬으시오. 시련에 꺾이지 마오.
또한 아무와도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지 마오. 당신은 나의 상태를 이해하겠지. 당신은 나의 가장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좋은 것들을 기억하고, 당신이 노력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당신 자신이나 집안 식구들이 이 끔찍한 순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부탁하는 바이오...... (중략) 나는 당신 때문에 큰 걱정 속에서 살고 있소. 만약 당신이 내가 위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 염려 말라는 몇 마디 안심시키는 말을 내게 쓰거나 전할 수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이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내 영혼 속에서 떨어져 나갈 텐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마음 굳게 먹으라고 당신에게 당부하고 애원하는 바이오.”
부하린은 “고문 없이” 자신의 죄상(?)을 자백했다고 해. 하지만 그 자백은 가장 큰 고문의 결과였다고 하지. “당신이 이러면 당신의 아내와 자식이 죽어.” 부하린은 스탈린에게 “코바(스탈린의 애칭) 내 죽음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죽어가면서도 아내의 안위만큼은 믿었겠지만 스탈린이 어디 보통 냉혈인간이어야지. 안나 라리나 역시 죄수 신분이 된다. 소련 당국은 남편을 비판하면 석방해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 그나마 많은 반동분자(?)들의 아내들이 남편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스탈린의 마지막 배려였을지 아니면 사형을 앞두고 일어난 인사이동의 혼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안나는 어린 아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고 아들이 거의 청년이 된 뒤에야 해후하게 돼. 신기하게도 아들은 어머니를 알아 봤다는군.
그로부터 근 50년 동안 안나는 남편 부하린의 복권을 위해 노력해. 그 열매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에야 열린다. 부하린의 복권이 이뤄진 거지. 그때 그녀는 남편이 체포되기 며칠 전 자신에게 유언처럼 한 말들을 또박또박 기억해 내. 부하린은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적지 않고 외워서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신의 진심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고 무려 반세기를 안나는 그걸 잊지 않고 기억했던 거야. 그 중의 한 마디. “동지여 명심하라. 혁명 성공의 그날 동지들이 치켜들 깃발 위엔 나의 피 한 방울도 묻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안나는 우크라이나를 순방한 후 자신의 양아버지 앞에서 펑펑 울던 인간적인 공산주의자 부하린의 절규를 회고했다고 해. 그는 굶주림에 지친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지. “혁명 10년이 지나도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다니. 혁명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단 말입니까.” 어쩌면 안나는 모든 것을 혁명에 걸었던 혁명가의 그런 솔직하고도 인간적인 자기부정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예전 글을 쓰는 초반에 중국의 손문과 그 부인 송경령 얘기를 하면서 송씨 자매들의 얘기를 그린 영화 <송가황조>의 한 장면을 얘기한 적 있지? 송경령의 아버지 송가수가 선물한 성경책에 특수 잉크로 써 놨던 글귀 기억나니? “혁명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혁명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혁명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는 20세기의 역사가 증명하지. 스탈린부터 폴포트까지. 하지만 그 숱한 배신과 좌절 속에서도 인민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한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반세기를 버틴 한 여인의 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해. 광기의 반동을 튕겨 올라 희망의 종을 칠 수 있는 건 종국에는 사랑일 테니까.
ㅡ From 후배 김형민PD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고백>이라는 영화가 있어. 이브 몽탕 주연. 아는지 모르겠지만 가수와 영화 배우로, 연애 박사로 유명했던 이브 몽탕은 맑시스트로서의 신념을 평생 견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 하지만 <고백>은 그 맑시즘이 현실에 구현되고 있는 동구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 영화야. 이 영화에는 체코 공산당 내의 숙청 과정이 등장하는데 트로츠키주의자 등 온갖 혐의를 뒤집어쓴 이들이 재판받는 과정이 나와. 이들은 자신들의 행적을 뼈저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너그러운 당이 그를 용서할 것이라는 회유를 받고 자신들의 죄상을 준엄하게 고발하지만 바로 그 죄목으로 목이 매달리고 말지.
이 비겁한 회유와 악랄한 재판 방식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즐겨 사용된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에서 남로당 숙청할 때 남로당원들은 뻔하고도 또 뻔한 ‘죄’를 자백한 뒤 죽어갔지. 이 악풍악습의 연원은 스탈린 치하 소련의 대숙청 기간으로 거슬러 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빨을 뽑고 손톱을 뭉개는 고문을 통해서, 또는 “당은 당신을 아끼오. 과오를 저질렀다 한 마디면 하면 되오.”하는 회유를 거쳐 자신들의 죄상을 고백한 뒤 뒤통수에 총알을 맞거나 목이 매달렸지.
러시아 혁명사에 등장하는 쟁쟁한 이름들이 수없이 사라졌다. 평생을 혁명에 바친 혁명가들과 그 가족들이 하루 아침에 반동분자가 돼서 재판정에 서거나 재판도 없이 죽어갔지. 그 가운데 최고급의 인재를 꼽을 때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있지. 1888년 9월 27일( 러시아력으로) 태어난 니콜라이 부하린이라는 사람이야. 이병주 소설 <지리산>을 보면 한 식민지 조선인이 부하린의 죽음을 들며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등장해. 혐오감을 줄 만도 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허무하게 쟁쟁한 공산주의자들이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죽어갔지만 부하린은 그 가운데 우뚝 선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공산주의자로서의 유능함과 활동상에 대해서는 검색 한 번으로 알아보기 바란다. 열 번도 더 얘기했지만 그런 건 내 글에서 논할 바 아니니까. 좀 다른 얘기지만 혁명가들은 유난히 로맨스가 많아.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의열단 청년들이 천하의 멋쟁이로서 뭇 중국 조선 처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것은 한 예일 뿐이고 모택동을 비롯해 중국의 혁명가들도 마찬가지고 (주은래 정도는 예외로 하자) 러시아 혁명가들도 그랬어. 부하린도 결혼을 세 번씩이나 한 여복 많은 사람이었지. 그게 왜 여복이냐고 물으면 뭐 할 말 없다 넘어가자.
처음엔 사촌 여동생, 두 번째는 동료 혁명가의 여동생이었지만 두 번 다 이혼으로 끝났지. 두 번씩이나 장가를 간 이 홀아비, 하지만 ‘두뇌만큼은 섹시한’ 이 중년의 혁명가에게 한 10대의 꽃다운 처녀가 연정을 품지. 안나 라리나라는 여자였어. 그녀 역시 혁명가 집안 출신이었고 레닌이 가장 신뢰한 보좌관 중의 한 명인 유리 가린의 양녀였어. 스탈린이나 레닌의 무릎 위에서 재롱을 피우면서 자란 여자였지. 그런데 이 여자가 부하린한테 꽂힌 거야.
안나는 가슴 설레며 쓴 연애 편지를 아버지뻘의 부하린에게 연신 전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고 부하린도 이에 화답하게 된다. 뭐 나 같아도 화답하고도 남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안나가 이 편지 좀 전해 주세요...... 하며 수줍게 편지 배달을 맡긴 사람 중에는 그 이름도 끔찍한 이오지프 스탈린도 있었다는 사실. 쓰루오카 히토시가 쓴 <마이너리티 세계사>를 보면 45세 부하린과 19세 안나가 결혼하던 날 스탈린이 술 취해서 이런 말도 했었다는군. “부하린 자네가 또 이겼네.” 스탈린도 마흔 살에 열 여덟 살 신부를 맞은 적이 있는 입장에서 뭐 크게 부러워할 일은 없었겠지만 스탈린도 안나에게 흑심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
부하린은 스탈린에게 맞서다가 쓴맛을 본 이후 납작 엎드려 있었지만 스탈린이 언젠가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던 것 같아. 프랑스 작가 로망 롤랑에게 “스탈린이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푸념했다고 하니까. 아니나다를까 레닌의 관을 함께 들었던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가 숙청당한 뒤 스탈린의 칼날은 부하린을 향해. 그는 “고리키를 독살하고 레닌과 스탈린을 암살하려 했으며 제국주의 국가에 소련 국토를 헌납하려 했다.”는 황당한 누명을 쓰고 죽게 돼.
스스로도 예상했던, 그러나 황망했던 죽음을 앞두고 부하린이 가장 걱정한 건 그의 나이 어린 아내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이었지. 무려 50년 넘게 소련 내무성 서랍 안에 잠자고 있다가 세상에 나온 부하린의 편지는 혁명가로 평생을 지낸 한 남자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곳곳에 담고 있어.
“(전략) 나는 당신이 염려되오. 다른 사람들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염려스럽소. 당신은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마오. 소비에트 연방의 위대한 사업은 살아 있고,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 개개인의 운명은 위대한 사업과 비교했을 때 덧없고 가벼운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시오. 거대한 시련이 당신 앞에 있을 거요. 사랑하는 그대, 당신에게 간절히 바라건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혼의 현(鉉)들을 팽팽히 가다듬으시오. 시련에 꺾이지 마오.
또한 아무와도 무언가에 대해서 말하지 마오. 당신은 나의 상태를 이해하겠지. 당신은 나의 가장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좋은 것들을 기억하고, 당신이 노력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당신 자신이나 집안 식구들이 이 끔찍한 순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애써 달라고 부탁하는 바이오...... (중략) 나는 당신 때문에 큰 걱정 속에서 살고 있소. 만약 당신이 내가 위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 염려 말라는 몇 마디 안심시키는 말을 내게 쓰거나 전할 수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이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내 영혼 속에서 떨어져 나갈 텐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마음 굳게 먹으라고 당신에게 당부하고 애원하는 바이오.”
부하린은 “고문 없이” 자신의 죄상(?)을 자백했다고 해. 하지만 그 자백은 가장 큰 고문의 결과였다고 하지. “당신이 이러면 당신의 아내와 자식이 죽어.” 부하린은 스탈린에게 “코바(스탈린의 애칭) 내 죽음이 왜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죽어가면서도 아내의 안위만큼은 믿었겠지만 스탈린이 어디 보통 냉혈인간이어야지. 안나 라리나 역시 죄수 신분이 된다. 소련 당국은 남편을 비판하면 석방해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 그나마 많은 반동분자(?)들의 아내들이 남편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스탈린의 마지막 배려였을지 아니면 사형을 앞두고 일어난 인사이동의 혼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안나는 어린 아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고 아들이 거의 청년이 된 뒤에야 해후하게 돼. 신기하게도 아들은 어머니를 알아 봤다는군.
그로부터 근 50년 동안 안나는 남편 부하린의 복권을 위해 노력해. 그 열매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에야 열린다. 부하린의 복권이 이뤄진 거지. 그때 그녀는 남편이 체포되기 며칠 전 자신에게 유언처럼 한 말들을 또박또박 기억해 내. 부하린은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적지 않고 외워서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신의 진심을 밝혀 줄 것을 요청했고 무려 반세기를 안나는 그걸 잊지 않고 기억했던 거야. 그 중의 한 마디. “동지여 명심하라. 혁명 성공의 그날 동지들이 치켜들 깃발 위엔 나의 피 한 방울도 묻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안나는 우크라이나를 순방한 후 자신의 양아버지 앞에서 펑펑 울던 인간적인 공산주의자 부하린의 절규를 회고했다고 해. 그는 굶주림에 지친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얘기하며 이렇게 말했다지. “혁명 10년이 지나도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다니. 혁명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단 말입니까.” 어쩌면 안나는 모든 것을 혁명에 걸었던 혁명가의 그런 솔직하고도 인간적인 자기부정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을지.
내가 예전 글을 쓰는 초반에 중국의 손문과 그 부인 송경령 얘기를 하면서 송씨 자매들의 얘기를 그린 영화 <송가황조>의 한 장면을 얘기한 적 있지? 송경령의 아버지 송가수가 선물한 성경책에 특수 잉크로 써 놨던 글귀 기억나니? “혁명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혁명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혁명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는 20세기의 역사가 증명하지. 스탈린부터 폴포트까지. 하지만 그 숱한 배신과 좌절 속에서도 인민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한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반세기를 버틴 한 여인의 사랑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생각해. 광기의 반동을 튕겨 올라 희망의 종을 칠 수 있는 건 종국에는 사랑일 테니까.
ㅡ From 후배 김형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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